[116호]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나요? / 오솔비 모담지기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3-10-24 조회수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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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터뷰 #5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나요?


인터뷰이 : 홍혜영(놀이세상시옷 기획자)

취 재: 오솔비 모담지기


"특별한 대상을 사랑하는 문화예술교육자들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닮아 곧 나를 말해주기도 한다.

화예술교육현장에서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과 이야기가 궁금해 올 한해는 잘 들여다보기로 했다.

누구를 사랑하며 어떻게 사랑하는지가 자신의 삶을 드러내니 ‘삶터뷰’로 이름을 달았다. "


 

   사랑으로 키우는 식물들과 홍혜영                                                                                     ▲북구에 위치한 놀이세상시옷

인터뷰 전 혜영 씨는 이렇게 말했다. “문화예술 몇 년 한 것밖에 없는데 인터뷰가 될까요?” 그 목소리에서 생기를 느꼈다. 나는 , 충분하죠라고 답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터뷰를 하는 건 나에게도 늘 숙제였다. 그럼에도 밝고 따듯한 그 목소리에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또 하나의 빛나는 삶터뷰가 시작되었다.


문화예술을 만나다      

혜영 : 예술을 전시관이 아닌 현장에서 만났어요. 대인시장 2008복덕방 프로젝트현장에서요. 예술인이 아니라, 일반인에 의한 예술로 시작했지요.

 

놀이세상시옷소개    

혜영 :놀이세상시옷’(이하 시옷’)은 놀이가 좋아 놀이를 연구하는 단체예요. 전래놀이, 스포츠 스태킹, 보드게임 등 모든 놀이에 열려있고 놀이 문화를 확산하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전래놀이 지도자 양성교육과 놀이문화지도자 자격증 과정을 들을 수 있고. 미래를 위해 숲·생태놀이지도사 자격증 과정도 개설했어요. 시옷에는 문은희 대표와 다양한 영역의 선생님들이 계세요. 시인 준비생, 등단한 작가, 기자, 연극배우, 은퇴한 선생님 등 인생의 2모작, 3모작을 준비하시는 21명의 조합원이 있습니다.

솔비 : 혜영 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 놀이에 익숙했나요?

혜영 : 문화예술이 삶과 밀접했죠. 숨 쉬듯이 놀고, 노래를 불렀으니까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우리끼리 놀이를 만들었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어요.

솔비 : 많이 달라진 세상이에요.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혜영 : 워낙 세상이 빠르게 변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됐잖아요. 하지만 진리는 있어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지켜야 될 덕목이 있기에 옛날 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비 : 옛날 교육이라면 어떤 교육일까요.

혜영 : 심리를 공부하는 친구가 두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어요. 한 가정은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아이가 원하는 것들을 다 들어주었고, 다른 가정은 부모가 엄격해서 잘했을 때는 칭찬해주지만 잘못했을 때는 다그치고 혼냈어요. 첫 번째 가정의 아이는 성장한 뒤 삶을 포기했어요. 극단적인 예지만 그 아이는 세상이 자기한테 이렇게 대할 줄 몰랐다고 했대요. 살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항할 줄 모르고 자기를 지킬 수 없어서 자살을 했으니 비극이죠어른의 훈계는 꼭 필요해요. 어릴 때 선생님께 많이 혼났지만 정서는 편안했어요. 따끔하게 혼나면서 가치관을 세워나갔죠. 그렇게 꾸지람을 들어도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이웃이 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핵가족에서 핵개인 사회가 돼버렸잖아요. 살아남기 바빠서 내 주변을 둘러볼 수 없어요.

솔비 :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었죠. 누구의 인권도 침해되지 않고 세상이 변하면 좋겠어요. 혜영 님의 교육법은 어떤가요.

혜영 : 아이에게 여러 관계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학교 말고도 지역아동센터, 교회 등 다른 무리가 있으면 한쪽에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다른 통로로 위로 받을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이웃이 있고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줘야해요. 그리고 연결망을 만들려면 내 자식만 내 아이가 아니에요. 거기에 있는 어린이들도 내 아이가 돼야 하죠. 끈끈하지는 않지만 느슨한 공동 육아의 울타리가 있어야 해요. 그런 울타리 안에서 서로 어려움도 알고 보듬어줄 수도 있죠. 애들은 엄마 말보다 이모 말을 잘 들어요.

솔비 : 기획자로서의 고충은.

혜영 : 저는 많은 선생님들과 일하고 싶어요. 하지만 인건비 비율이 높지 않아요. 함께 할 선생님들은 많지만 강사료를 드릴 수 없는 것이 고민이에요. 재료는 아껴 쓰면 되지만, 강사료에서 항상 고민하죠. 현대는 각자 너무 바빠서 누군가의 시간을 사지 않는 이상 그의 경험을 나누기 어려워요. 인건비를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좋은 경험을 함께 할 수 있죠. 개인이 건강해지면 우리까지 더불어 재밌어져요. 혼자 하는 것이 아닌 함께여서 아름다운 것이니까요. 그리고 저의 재미도 잘 찾아가야겠죠.


  

   오늘 아침에 따온 애플민트 향을 맡으며 향기로운 인터뷰    


솔비 : 요즘 무엇에 가장 재미를 느끼세요?

혜영 : 요즘 압화에 꽂혀있어요. 수업에서 쓰려고 계속 압화를 하고 있어요. 직접 키운 애들로 압화를 하니까 더 즐거워요.

솔비 : 혜영 님의 정원은 어디인가요.

혜영 : 집 밑에 화단이 있고, 옥상에도 있고, 남구에도 있고, 시누이 농장에도 있고, 여기 시옷에도 있어요.


솔비 : 가장 기억에 남는 놀이대장이 있다면.

혜영 : 두 해째 함께하고 있는 친구인데 처음에는 수줍음이 많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았어요. 스포츠 스태킹 수업을 받고 대회를 나갔는데 그때 엄청 열심히 준비를 해온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어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커가더라고요. 특별히 뭘 한 건 없어요.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해야하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가나봐요.

솔비 : 문화예술교육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요.

혜영 : 고집스럽게 자신의 예술성만 추구하던 내가 여러 현실 풍파 맞으며 '일상예술가'로서 살아가고 있어요.

 

 

                                              홍혜영의 정원                                                                                                                             그래, 거미도 함께 살자    


솔비 : 일상예술가는 일상에서 예술하는 예술가인가요.

혜영 : 그럼요. 땅을 가꾸는 건 대지예술이죠. 땅을 가꾸려니까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도 챙겨야 해요. 제가 화단에서 쥐하고 공생하고 있거든요. 없애고 싶었으나 차마 없애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동네 고양이들도 자꾸 놀러와요.

솔비 : 쥐까지 사랑하시려고요? 쥐도 자연에 도움이 되나요?

혜영 : 두더지는 도움이 되는데 쥐는 안 좋다고 해요. 공생한 지 2년이 넘다보니까 눈 감고 있어요. 언제까지 그 화단을 쓸 지 모르거든요. 내가 하는 동안이라도 살게 하려고요. 그리고 생각보다 이쁘게 생겼더라고요.


 

                                                                 ▲ 정원 속 홍혜영                                                                                                                          ▲바질을 선물해 주셨어요

 

솔비 : 생태계를 생각하는 마음이 곧 사람을 대하는 마음일까요. 생태계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라면저한테는 모두가 꽃처럼 예쁘지는 않거든요. 사랑하려고 애써보면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게 되나요.

혜영 : 들여다보고 시간을 할애하면 이해할 수 있어요. 작은 생명이라도 편이 필요해요.

솔비 : 앞으로 만나고 싶은 대상이나 교육 방향이 있다면.

혜영 : 예전에는 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초기화 상태입니다. 우리부터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어요. 개인을 살려야 지속 가능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교육은 저한테 재미없어요.

 "活私開公(활사개공) 나를 살려서 공공의 이익을 열어간다." 

개인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단체는 존재할 이유가 없으며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없어요. 사리사욕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건강한 개인이 있어야 해요.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인데, 환갑잔치도 함께 하면서 늙어가자고 해요. 문은희 대표의 영향이 컸어요. 사람을 좋아해서 함께하려고 젖어들다 보니 마음을 나누고 개인을 살리고 싶어요.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 속 가치 있는 일들을 찾고자 한다. 그게 일상 예술가로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다."

 

모든 것을 사랑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생명에게는 편이 필요하다. 어느 생명에도 소홀히 대하지 않고 편이 되어주려고 하는 그녀를 보면서 어찌 살아야 할 지 크게 배웠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내 편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인가. 내 편을 찾느라 헤매기 보다, 누군가의 편이 되어주고 싶어지는 밤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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