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호] 자연, 문화와 예술에 꼭 필요한 / 정혜원 모담지기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3-11-28 조회수 89


자연, 문화와 예술에 꼭 필요한


인터뷰이 : 이소선(이야기공방 마음담기 대표)

취        재 : 정혜원 모담지기


이소선은 제주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교육가다. 제주도에서 문화예술교육이라니 상상만 해도 교육할 환경이 좋을 것 같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외적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환경이다. 서울에서의 긴 생활을 마무리 짓고 제주도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제주도에서는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을까. 궁금한 점이 참 많았다. 최근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가을 제주에 흠뻑 빠져있던 나는, 공연 때문에 광주에 방문한 인터뷰이와 가을 제주의 아름다움에 대해 나누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ACC 내부, 인터뷰이가 평소 오고 싶었던 카페에서 마주했다.



한창 바쁠 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가예요. 문화 기획 전반, 특히 교육 부분을 좋아해서 중점적으로 하고 있어요.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아동청소년극을 전공했고, 거기서 처음으로 연극, 예술, 어린이를 만났죠. 현장에서 활동한 지는 15, 제주에서 활동한 지는 9년 정도 됐습니다.

 

그전에는 어디에 있었나요?

서울에 있었어요. 완전 서울 토박이예요. 지금은 82 정도로 제주와 제주가 아닌 곳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제주에 터를 잡고 일하고 있지만, 예술가로서 느끼는 갈증 중 제주에서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어 다른 지역도 가고 있어요.


갈증이라니 궁금한데요.

분명히 환경에는 장점이 많아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아직 제주는 문화예술교육 자체에 대한 이해와 규모가 크지 않아요. 최근 제주의 문화예술교육 흐름을 보면 많이 성장했고 양적으로도 늘었지만, 제 경우 큰 규모의 길게 갈 수 있는 연극 제작이나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양질의 프로젝트를 함께할 동료가 없더라고요. 그런 깜냥을 가진 친구들과 한 번씩 프로젝트 성 일을 하러 육지에 가고 있어요.




아동극 의 제주공연사진. 이소선 교육가는 육지의 좋은 공연을 제주와 연결하는 지역파트너 역할도 하고 있다.



멋진데요. 그런 활동을 하고 오면 또 제주에서 하는 활동에 아이디어도 되겠어요. 그런데 어쩌다 제주로 이주를 결심했나요?

남편이 제주 특성화 고등학교에 교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서울에 같이 있다가 제주에서 영화 영상 교육할 기회가 생겨 먼저 내려갔죠. 일 년 뒤, 결혼하고 따라 내려갔어요. 그즈음 제가 서울을 떠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주에 살다 보니 어렴풋이 알겠더라고요. 실은 서울의 규모나 속도를 무서워하고 있었구나.. 서울에선 늘 뛰어다니는 모범생이었어요. 그러다 20대 후반에 나를 직면했죠. 예술은 도발적이고 계속 질문을 던지잖아요. 수많은 질문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그 속에서 지치고, 질문이 끝나갈 즈음엔 삶의 페이지를 넘기고 싶었어요. 그때 제주로 간거죠처음 제주에서의 1~2년은 아이를 낳고 기르고, 천천히 살았어요. 다시 밥을 지어 먹고, 필요한 만큼 걷고,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러다 보니 다시 살아지더라고요. 너무 낭만적으로 이해한 걸 수 있지만 제주는 좀 천천히 걸어도 되고 원할 때 누워도 돼요. 원할 때 또 뛰어도 되고요. 지금은 또 엄청 뛰고 있거든요.(웃음)



학교에서 초등학생 아이들과 낭독극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행복해 보이세요. ‘제주도에서 문화예술교육은 뭔가 다른가요?

서울에서 한시간 반 정도 떨어진 초등학교로 수업을 다녔을 때, 거길 가려면 지옥철을 두 번 갈아타고, 마을버스까지 타야 학교에 도착해요. 너무 지치거든요. 이 마음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기 싫어서 거짓말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아닌 척해도 아이들에게 전달되거든요. 내가 즐겁지 않은데 어떻게 아이들을 즐겁게 하겠어요.

제주에 와서 비슷한 수업을 했어요. 1시간 이상 운전해서 가야했고요. 제주도에서 1시간이면 어마어마한 여정이에요. 도민은 절대 안 갈 거리인데, 아기도 어리니까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출발해요. 운전하다 보면 끝없는 하늘에 오름, 억새.. 어느새 노래를 흥얼거리고 아름다운 것을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수업의 영감이 피어나고요. 그래서 제주도에서 수업하면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시도들을 해요.

서울에서 살 때에는 몰랐지만, 문화예술교육과 자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요. 물론 아이들을 교육하는 환경에도 제주도의 자연은 특별히 좋지만, 교육가가 수업에 임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쳐요.


사실 질문 하면서도 예상하는 답이 있었어요. 제주도는 문화예술교육 하기에 환경이 좋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활동할 수 있다. 이 정도의 답을 예상했는데, 1차원을 넘어서 2, 3차까지 제주의 자연은 영향을 주고 있네요.

맞아요. 내 삶의 태도와 환경이 수업과 학생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는구나 제주와서 더 느껴요



고즈넉한 시골마을에 위치한 제주 크라예술학교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는 이소선 교육가



교육가에게도 제주의 자연은 특효약이네요. 올해 한 사업 중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영유아 공연을 이야기할게요. 그걸로 광주에 왔거든요. 공연으로 만난 영유아는 10~18개월 이에요. 보통 걷기 시작하고 한두 마디 말을 하죠. 영유아 공연을 한다고 하면 아기들이 공연을 볼 수 있나요?”하고 많이 물어봐요.

영유아는 제가 만나본 다양한 연령 중 계속 궁금하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대상이에요. 그 친구들은 감각의 천재거든요. 엄마 뱃속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굉장히 영험한 기운이 있는.(웃음) 우리는 영유아가 연극을 경험하고 감각 할 수 있다는 걸 믿어요. ‘본다는 너무 시각적으로 한정된 표현이라, 보네 안 보네로 판단하면 영유아를 위한 연극이 성립되기 어렵죠.

영유아는 어떻게 세상을 감각 하지? 우리가 보는 걸 저 친구들은 어떻게 보지? 너무 익숙한 우리의 감각과 이제 막 세상을 터득해 나가는 저들의 감각은 어떻게 다르지? 고민하면서 예술을 매개로 만날 방법을 연구했어요. 그렇게 삼 년간 연구해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연구소 영유아극 연구개발 프로그램 이 탄생했죠. 코로나 기간이어서 쇼케이스만 하고 영유아 관객을 많이 못 만났는데, 제주문화예술재단 유아예술교육사업을 기획하면서 그 팀을 제주에 부르게 됐어요.

크라예술학교 천혜 자연 들판 속에서 아기들이 충분히 세상을 감각 하다가 극장으로 초대되고, 공연이 끝난 뒤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가요. “공연 끝났으니 가세요하지 않고 그 친구들의 속도와 시간을 기다렸고, 공연은 대성공이었죠. 그 후 ACC 어린이극장에서 불러줘 광주에 왔어요. 여섯 번 공연했고, 90여 분 정도 아기와 부모님을 만났어요. 추가로 공연 뒤에 클래식 기타 듀오 콘서트도 붙여 편안하게 기어 다니고, 우유 먹고, 잠도 들고 하면서 한 20여 분 기타 연주까지 들었어요.



ACC 공연 리플릿



저도 어쩔 수 없는 익숙한 감각을 가진 성인이라, 공연 내용을 상상할 수 있게 설명하면요?

입장할 때부터 아이들의 경험은 시작해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들어오는 거라 아이들이 무서워하면 나갔다가 진정해서 들어오기도 하고요. 입장 전에 아이와 부모의 컨디션 체크도 중요해요. 부모가 우울하고 오기 싫었는데 왔다면 아이도 즐길 수 없어요.

실제 공연은 청각, 시각 중심 공연이에요. 음악이 나오고 몸을 잘 쓰는 배우 악사, 마이미스트가 무대를 이끌고요. 아주 큰 천이 파도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만 빼면 아이들이 만지고 느낄 수 있게 무대에 들어오는 것도 돼요.

제가 교육감독으로 있었는데, 사전에 부모에게 당부해요. 민폐 될까 봐 아이들의 행동을 제지하지 말고 부모도 공연을 일단 보라고요. 부모가 눈치를 보고 긴장하면 아이들에게 전달돼요. 그리고 자꾸 지시하고 가르쳐 주지 말라고도 해요. “어머 파도가 나오네~ 어머 저거 봐봐 파란색이야~”이러는 분도 있거든요. 아이가 배고파하면 젖을 먹여도 되고 우유를 먹어도 되고요



ACC 공연 프로그램에서 자유롭게 공연을 경험하는 아이들

 

점점 상상이 가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연극이네요.

맞아요. 저희가 아무리 공연을 열심히 준비해도 아이마다 꽂히는 게 있어요. 조명에 꽂혀서 그것만 보기도 하고요. 어떤 애는 선생님 청바지 무늬에 꽂혀요. 그래도 그 경험이 실패는 아니거든요. 아이들이 전체를 봐줬으면 좋겠고 배우들이랑 호흡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다만 집에서 늘 같은 패턴과 반복된 장면을 보던 아이들이 여기까지 와서 평소 해보지 않았던 감각 경험을 충분히 해보는 거죠.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의 놀이가 좀 달라져요. 까꿍 놀이를 갑자기 많이 한다거나, 예민한 아이들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감각 정보가 들어와 피곤해 울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이를 예술로 만나는 것에 대해 부모님과 충분한 소통과 섬세한 안내가 필요해요.


과정에서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없나요?

에피소드 보다는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 있었어요. 끝나고 받은 피드백 중에서 어떤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유아예술교육이면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애들을 지원하는 건데, 왜 영유아를 지원해줬어?” 처음에는 굉장히 불쾌하고 어떻게 이런 무식한 말을 할 수 있지? 싶었는데, 그 말이 계속 맴돌았어요.

자꾸 연령대와 대상, 증거로 나누려는 문화예술교육 판에서 이런 질문이 들어올 때 나는 어떤 답을 해야 하지? 현장 반응은 뜨겁고 좋았던 영유아 극이 탁상에서는 그런 질문 하나에 막히니까요.

나는 새로운 판을 만들기에는 품이 작으니까 현장에서 열심히 해야지항상 이렇게 생각했는데, 최근에 이런 일을 겪으면서 새롭게 고민하고 있어요. ‘저거 아닌데라고 말만 하지 말고 어떤 태도와 흐름을 만들어내야 우리가 하는 작업이 더 가치 있고 설득력 있어질까 고민해요.

 


자연과 문화예술교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정의하는 이소선 교육가. 교육 환경으로도, 마음가짐에도 자연이 이렇게 영향을 줄 수 있나 인터뷰 내내 느낀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이소선 교육가를 주변의 파도에 굴하지 않는,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누워도 된다고 가르쳐준 제주에서 열심히 뛰는 인터뷰이는 또 한걸음 도약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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