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호] 마을을 품은 학교, 학교를 품은 마을 / 정혜원 모담지기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3-11-28 조회수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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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품은 학교, 학교를 품은 마을


인터뷰이 : 이민희(깨움마을학교 사회적협동조합 대표)

취      재 : 정혜원 모담지기



지역과 학교가 연결되어 문화와 배움을 함께하는 마을학교라는 말이 익숙해지는 요즘. 전남 영광군 묘량면 작은 마을에서 마을과 학교가 조화를 넘어 공동체가 되었다. 마을에 하나 남은 학교를 지키기 위해 시작했던 일들이 모여 이제는 마을의 미래를 그린다. 회의에 치여 정신없이 맞이한 와중에도 따뜻한 커피를 챙기는 이민희 대표를, 소담한 마을 묘량에서 만났다.



바쁜 와중에 따뜻한 커피를 건네는 이민희 대표와 마주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깨움마을학교 사회적협동조합 대표 이민희입니다. 이곳은 영광군 묘량면인데요, 군 내에서도 가장 열악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프라가 부족한 마을입니다. 그 속에서 마을을 품은 학교, 학교를 품은 마을이라는 비전으로 학교와 마을을 연결, 사라져가는 농촌의 교육을 묘량마을의 자립적인 역량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원래 이곳이 고향인가요?

아니요. 저는 서울토박이에요.(웃음) 30대까지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2007년 서울, 대구, 광주에 살던 마음이 맞는 세 가정이 모였어요. 더 늦기 전에 사회적으로 열악한 농촌에 가서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 기왕 사는 인생 기여하며 살자. 하는 마음으로 내려왔어요. 각자의 삶을 다 정리하고 내려와 처음 만든 게 노인복지센터였고, 살다 보니 단순히 복지 서비스 하나만을 공급한다고 해서 농촌의 노인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진 못하더라고요.

농촌은 인간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곳으로 전락하고 있었고, 다양한 삶의 요구에 총체적인 해결책이 필요했죠. 그렇게 여민동락이라는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대표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민동락으로 시작해서 마을학교까지 오게 된 거죠. 노인복지로 출발해서 점차 확장되었고, 지금은 농촌 지역 재생과 활성화 사업이라고 표현해요.

 

마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네요. 깨움마을학교는 어떻게 세워졌나요?

아이가 셋 있어요. 중학교 1학년, 5학년, 3학년. 셋 다 묘량중앙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학교가 20098월 폐교 통보를 받아요. 그 소식을 듣고 충격받았죠. 첫 번째, 우리 애들이 다닐 학교가 사라진다. 두 번째, 학생 수가 없다고 이렇게 학교를 막 없애도 되는 건가? 지역 주민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정이 이해가 안 됐고요. 세 번째, 결국 농촌은 죽으라는 얘기구나. 그때도 지금도 농촌은 위기인데, 사람들은 계속 빠져나가고 새롭게 들어오진 않으니 당연히 고령화되고요.

지역의 활력이 떨어지니 이곳에 생활이나 사회적 인프라 투자는 당연히 적어지겠죠. 그나마 묘량면이 명맥을 유지한 건 묘량중앙초등학교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학교가 없으면 이 지역에 누가 어떻게 들어와 살죠? 그나마 살겠다고 들어온 사람들마저 돌려보내는 거에요. 농촌을 살려도 모자랄 판에 죽이는 국가의 행보에 화가났죠.



 

전통 방식의 손 모내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 입장이니까 더 절실했겠어요.

그렇게 작은 학교 살리기운동을 시작해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삼 년 노력의 결과 학생 수가 오히려 늘어 폐교 위기에서 벗어났어요. 오만가지 활동을 했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은 학부모니까 먼저 뭉쳤어요. ‘학교발전위원회를 설립해 일일 밥집도 하고, 신문에 기고도 하고, 교육청으로 쫓아다니기도 하고요. 돌봄 교실도 운영했죠.

가장 큰 건 통학버스를 운영한 건데요. 폐교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명분이 필요한데, 그건 딱 하나 학생 수가 늘어나는 거예요. 이 작은 학교의 교육, 문화가 좋아 학부모가 아이를 보내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보내기 어렵다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죠. 모금 활동으로 봉고차 한 대를 사서 학부모들이 돌아가면서 통학버스를 운행했어요. 8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학기 중이건 방학이건 상관없이 하루 세 번 등교, 하교, 학원까지 아이들의 등하교를 시켰어요.

 

8년 이라니..어마어마한 끈기인데요? ‘작은 학교 살리기운동이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같아요.

그것도 학생 집집마다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안 사정을 알게 되고 관계가 만들어졌죠. 어마어마한 신뢰가 생겼어요. 진정성이 전달됐습니다. 그런 노력이 알려지면서 인천, 광주, 서울에서도 연락이 오고 실제로 거주지를 옮겨 내려온 가정이 6~7가구 정도 됐어요. 새로 집을 지어 작은 마을이 하나 만들어졌죠. 지금도 거기 아이들이 묘량중앙초를 다녀요. 영광군에서도 몇몇 가정의 아이들이 여기로 등교하고요.

삼 년 만에 학생 수 12명에서 34명으로 증가해 폐교 위기를 벗어 났고, 현재는 6~7년째 100여 명이 꾸준히 다니고 있습니다. 영광군에서 면 단위 학교로는 제일 커요. 당시 급식실도, 체육관도 없었는데 지금은 급식실에 조리사도 있고 체육관도 생겼고요. 학생 수가 늘어나니 통학버스도 두 대 지원해줘서 안정적으로 돌아가니까 저희의 민간 통학버스 운영을 종료했죠.



마을생태과학교실 중 숲 밧줄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묘량중앙초등학교는 교육과정도 특별하다고요?

초반에 이야기했듯, ‘마을을 품은 학교, 학교를 품은 마을을 비전으로 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어요. 학년별로 마을학교 교과과정이 수립되어 있고, 강사도 모두 마을 주민들이에요.

도시에 비해 문화 열세 지역이잖아요.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갈 데가 없고, 학교 정규 교육과정이 그것까지 책임질 수도 없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학부모들이 주로 마을학교 교사로 참여해 다양한 놀이 프로그램을 했어요. 여행, 역사탐방, 요리, 공예 등 재능 기부로 이뤄졌죠. 동아리 수준으로 소소하게 출발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민??학이 협력하는 활동으로 발전했어요.

학년별로 교육과정이 있는데 예를 들면, 4학년은 어린이 농부학교, 5학년은 마을생태과학교실, 6학년은 와글와글 마을기자단 등 일년에 16차시 수업해요. 학교 교육에 녹아들어 격주에 한 번 수업처럼 운영하고 있어요.

 

학교와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겠네요.

학교 선생님들과 상시로 협력과 소통을 하고 있죠. 말이 격주에 한 번이지 농부학교의 경우 아이들이 직접 벼농사부터 농작물을 기르기 때문에 매일 돌아봐야 해요. 실제로 애들이 등교 버스에서 내려 바로 농장으로 달려가고요. 와글와글 기자단도 신문을 발간하기 때문에 편집 과정에는 매일 만나기도 합니다.


마을학교 선생님들이 다 마을 분이니까 실제 마을 분위기도 바뀌었을 것 같아요.

학교가 살아나니까 마을의 풍경이 바뀌었죠. 초반에 이야기했듯 농촌은 지금도 공동체가 해체되는 위기 속에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묘량중앙초등학교와 마을이 연결되면서 공동체가 회복된 거예요. 학교 운동회도 지역 축제가 되고, 학교에 공연이 있다 하면 마을 어르신들 모두 가서 아이들과 섞여서 보고요.

학교의 문턱이 낮아지니 아이들이 자주 나오고 지역 사람들은 자주 들어가요. 농부학교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농사 스승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애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농사를 배우고 같이 지어요. 기자단은 노인복지회관에 와서 기관 탐방도 하고 어르신들 인터뷰도 하고요. 이렇게 어른부터 아이까지 다 섞이니 활력이 높아지고, 희망이 있고 미래가 보이는 마을로 바뀐 거예요.

올해 농부학교 아이들이 쌀농사를 지어서 80kg 수확했어요. 그럼 동네 방앗간에서 가래떡으로 싹 뽑아서 소포장하고 감사합니다 스티커를 붙여서 마을을 돌면서 나눠줘요. 그럼 면장님부터 경로당 노인들까지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르세요. 이렇게 삼 년을 하고 있어요. 애들은 그거 한 바퀴 돌면 이주일 먹을 간식이 생긴대요. 아이들과 주민이 만나면서 그런 일상의 활력이 생기는 거죠.



어린이 농부학교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희망농장에서 아이들은 마을 어르신 농부들과 함께 연중 농사를 짓는다



듣기만 해도 이사 오고 싶은 마을이에요. 모든 게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네요. 깨움마을학교 설립부터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면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그때도 지금도 가장 힘들죠. 학교하고 마을을 연결한다. 이게 학교는 학교대로 생리가 있고 마을은 마을대로 문화가 있어요. 양쪽이 너무 다른데 하나로 융합시키는 과정에 엄청난 인내가 필요해요. 눈에 보이는 사업적 성과만 보고 달려가면 안 되고, 실제 지역에 필요한가 아이들한테 필요한가를 깊이 고민하죠. 그렇게 한가지 안이 나오면 만나서 설득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요.

그게 깨움마을학교 사회적협동조합이 하는 역할이에요. 일회성 체험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제 삶의 터전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하는 곳이니까 더 신중하고 깊이가 있죠. 지금은 몇 년째 함께 협력하고 있고, 많이 체계화돼 있어요. 앞으로도 더 깊이 있는 내용, 더 안정된 시스템으로 지속 가능한 협력이 될 수 있게 하려고 해요.


마을학교가 지방 소멸 위기에 대안이 되네요.

사람이 사는 데 있어 교육만이 아니라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 영역들이 보장돼야 하죠. 마을교육공동체는 교육의 영역에서 지역 주민들을 묶고 활성화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지방 소멸을 극복한다고 보긴 어려워요. 생활 인프라는 사실 국가의 몫이죠. 그게 해결이 안 되면 이런 노력들은 언젠가 흩어질 거에요. 핵심은 주거 문제라고 보고 계속 관에 제기하고는 있어요.


깨움마을학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우리가 원하는 마을은 단순히 학교 교육 지원이 아니라 아이부터 노인까지 평생 배우는 문화, 교육이 풍부한 곳이면 좋겠어요. 묘량면은 도서관도 하나 없어요. 묘량중앙초등학교라는 유일한 교육기관을 매개로 집중되어 있지만, 마을 전체가 도시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걸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역할을 깨움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번에 묘량중앙초등학교가 학교단위 공간혁신사업에 선정되어 대규모 학교 증개축 공사에 들어가요. 마을의 문화 거점 공간으로 역할 할 수 있게 학교 공간을 재구조화 합니다. 삼 년 동안 공간을 기획했고, 올해 1130일 드디어 공사를 시작해요. 공간 기획에는 아이들, 교사, 학부모, 지역 주민 의견까지 수렴했어요.

학교 공간이 복합화되면 마을과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생겨요. 시뮬레이션하면서 이렇게 저렇게도 구상해보고요. 당장 한 해 한 해 프로그램을 해치우는 데 급급한 단체가 아니고 이 지역의 명운을 놓고 어떻게 하면 문화, 교육적으로 풍부해 그런 걸 보고 살러 들어오는 마을을 만들까 고민해요.



마을의 문화유적을 찾아가 배우고 경험하는 우리마을 역사탐험대


복합공간 소개 좀 해주세요.

그거 아세요? 대한민국 모든 학교가 교도소 건물하고 똑같은 거? 학교 건축의 표준안이 있어서 그래요. 배움의 장소니까 다양성이 기본이 돼야 할 것 같은데 21세기에 말이 안 되는 거죠. 공간이 하드웨어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공간을 바꾸면 공기가 달라지고 안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달라지잖아요. 그래서 공간혁신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그중 묘량중앙초등학교는 선두에 있죠.

먼저 아이들 메이커스페이스 공간을 만들어 농부학교와 연계된 농사에 필요한 기자재를 만드는 등 창작 활동을 할 거고요. 밭에서 채취한 재료로 바로 요리할 수 있는 공간도 농장 가까운데 있고요.

교실도 미래형 수업이 가능하게 양 교실 사이에 공유 공간을 두고 가변적으로 사용할 거예요. 통합 수업도 가능하게요. 또 교실에서 바로 운동장으로 나갈 수 있게 모든 문을 운동장으로 낼 겁니다. 아이들이 들어오기 전에 씻어야 되잖아요? 입구에 세면대를 달고요. 작은 하나까지도 의견을 수렴해서 분류하고 분석해서 공간으로 어떻게 구현할지 삼 년간 고민한 거죠.



인터뷰 내내 소탈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민희 대표.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결코 가볍지않다. 15년간 마을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생각했을지, 눈앞에 닥치면 누구나 절실하다지만 마을을 포기하지 않은 그 마음이 가늠조차 되지않는다. 묘량중앙초등학교 준공식에 꼭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건네며 묘량면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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