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호] 아픔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여자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3-12-22 조회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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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여자

 

인터뷰이 : 백효숙(배리어프리 예술교육 강사)

취 재 : 정혜원 모담지기

 


백효숙 씨는 6급 장애인이다. 만나기로 하고 남구장애인복지관에 방문했는데, 문을 열자 열정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효숙 씨가보였다. ‘2023 광주형 장애인 문화예술지원사업 배리어프리 예술강사 양성사업에 참여해 강사로 교육받고 처음으로 진행하는 수업이었다. 목숨을 건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도 계속 도전하는 효숙 씨의 삶이 궁금했다. 수업이 끝나고 조용한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와 함께 마주했다.



효숙 씨가 본인의 수업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효숙 씨의 인생이 궁금해요.

제 인생이요책으로 쓰려면 열 권은 더 써야 될 거에요. 나중에 제 인생을 가지고 책을 내고 싶다는 소박한 꿈도 있어요.(웃음)

아가씨 때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서울에서 전자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직장을 다녔죠. 다니면서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그래서 그만두고 고향인 광주에 내려와서 간호 전문 학원에 다녔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어요.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산부인과에 취직했는데, 지금처럼 간호대학이 많지 않아 간호조무사가 거의 간호사처럼 일했어요. 그때 정말 행복했죠.

몇 년 일하다가 미팅에서 신랑을 만났어요. 배를 타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일 년간 열심히 서울에서 광주로 편지를 주고받았죠. 졸업을 앞두고 남편은 배를 타야 하니까 시댁에서는 그 전에 결혼했으면 하더라고요. 남편도 오 년만 타면 끝이라고 하니까 그래 오 년은 기다리지해서 광주로 내려와서 결혼하고 임신을 했어요.

일 년 동안 배를 타면 두 달은 쉰다고 했는데, 결혼 두 달 만에 외양선을 타고 나가 38개월 만에 돌아왔어요. 열 달 동안 아들을 임신해서, 낳아서, 아이가 뛰어다니는 세 살 때 아빠가 온거죠. 시댁에서는 며느리 앞으로 돈을 보내면 다 쓰고 바람을 피울거라 생각해서, 오 년간 아들을 혼자 키우면서 지원을 하나도 못 받았어요


광주에서 따로 사셨다면서요. 그럼 아이를 어떻게 키우죠?

친정아버지가 남편도 없는데 직장 생활은 안 된다고 하셔서 병원도 못 다니고,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을 했어요. 수출품 뜨개질부터 전선 꼬는 일 등 안해본 부업이 없어요. 남한테 밉보이지 않게 열심히 키웠죠. 남편이 돌아오고 오 년 만에 생활비를 받았어요. 남편이 두 달 쉬고 또 배를 타러 가서 둘째도 혼자 낳아 길렀고요. 18개월 뒤, 둘째가 걸어 다닐 때 집에 돌아왔어요. 그렇게 15년간 남편은 배를 탔고, 저 혼자 아이들을 키웠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엄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아이들은 착해서 속 썩이는 것도 없었는데, 동네 시선이 힘들었죠. 그때만 해도 남편이 외국에 돈 벌러 가서 떨어져 사는 여자들이 많았어요. 저도 그 무리 중 하나고요. 그 당시에는 어디 화장하고 외출하는 것도 마음대로 못했어요. “똘이 엄마가 애들 놔두고 화장하고 어디 가네~” 이렇게 동네에서 수근대는 걸 듣기가 싫어서 아예 하질 않았어요. 아빠 월급 나오는 날에 애들 유생촌 데려가서 돈가스 사주고 백화점 가서 필요한 거 사오는 게 유일한 외출이었죠.


말만 들어도 숨 막히는 시절이었네요.

그렇게 15년 생활하다가 딱 일이 생겼어요. 남편이 콜롬비아에서 출발하려는 데, 그 배로 밀항한 사람들이 있다고 배를 압류하고 경찰서에 잡힌 거죠. 그때 제가 국제 변호사를 사더라도 남편 빼 오겠다고 난리가 났는데, 남편이 승선한 지 일주일 밖에 안 돼서 밀항이랑 무관하다고 풀려났어요. 8일간 콜롬비아 감옥에 있다가 귀국했는데 제가 선원수첩을 찢어버렸어요. “배 이제 그만 타라. 여기서 라면을 먹더라도 어떻게든 살자했죠.

그때 늦둥이 딸을 낳았어요. 남편은 생전 처음으로 아내 배가 부른 거랑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본 거예요.


어머, 정말 배가 부른 모습을 처음 보셨겠어요.

. 원래는 남편이 다시 배를 타려고 선원도 모집하고 준비를 다 했는데, 늦둥이 딸 때문에 마음이 변했어요. 그때 현대중공업에 이력서를 넣었고, 운 좋게 붙으면서 배 타는 생활을 끝냈죠.


그러다가 수술을 받게 된 건가요?

계속 장사도 하고쉬지를 않았어요첫 번째 수술은 2010년에 했는데그 당시에 한지 공예를 배우고 강사 자격증까지 땄어요배우던 공방에서 같이 수업도 하고 그랬는데어느 순간부터 볼펜을 들면 볼펜이 힘없이 손가락에서 쭉 빠지고밥을 먹는데 젓가락질이 안 되는 거예요그렇게 병원에 가서 목 엑스레이를 찍었는데완전히 엉망이었던 거죠장난으로라도 제 머리를 한 번 뒤로 때리면 그대로 쓰러지는 상태였대요그때만 해도 수술하면 죽을 수도 있다평생 불구로 살 수도 있다.”고 했어요.

조선대학교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목 앞 경추 3, 4, 5번을 수술하고 목 뒤는 4, 5, 6, 7번에 볼트를 심었어요큰 수술이었고거의 40일간 병원 생활을 했는데 수술이 잘 됐어요보시다시피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죠힘들 때 약간 목소리가 성대 결절처럼 나오고 나머진 괜찮아요.



    

                          △효숙 씨가 한지 공예로 만든 수납함                                                             효숙 씨가 직접 만든 손녀 옷



두 번째 수술은요.

고개 숙이는 일은 어려우니까 한지 공예를 접고 정리 수납을 배웠어요자격증도 따고 본격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일하고 있었는데, 2017년에 두 번째 수술을 받았어요그날도 정리 수납 컨설팅을 하기 위해서 차에 짐을 싣고 출발하려는데 전과 비슷하게 감각이 없는 거예요이상하다 싶어서 조대 병원에 가서 진통제 타서 먹고 출근해야지 했는데병원에서 퇴원을 안 시켜주더라고요이대로 나가면 큰일 난다고그렇게 수술을 받게 됐어요그 전에 수술한 부위 유착이 심해서 12시간 걸려서 수술했어요두 번째는 경추 2, 3번까지 수술을 했고, 6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죠병원에서 이제 더 이상 목에 손 못 대니까 조심하라고 해요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평지를 걸어 다니는 정도운동도 원래 정말 좋아했는데이젠 진짜 하면 안 된대요.




  △엠마우스복지관 장애인들과 정리 수납 수업을 하고 있다.

 


아픈 몸으로 쉬지 않고 뭔갈 해오셨네요.

어디 다리가 딱 부러져서 불구가 되지 않는 이상은 막 움츠리고 이러는 성격이 아니에요. 성격상 일을 보고 놀지도 못하고 남이 하는 일도 돕고요. 수술이 끝나고 보통 목 보조기를 여섯 달 동안 차는데 전 상태가 안 좋아서 아홉 달을 찼어요. 그러다 보니 서로 돕고 뭉쳐야 하는 협동조합이 운영되기 어려웠죠. 대표가 일을 할 수가 없으니까, 결국은 폐업했어요.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어서 사회적 기업으로 가려고 발돋움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활동 해보기도 전에 폐업한 느낌이라 너무 아쉽죠.


그 후에도 뭔가를 하셨을 것 같아요.

동생도 정리 수납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간단한 일 시켜줄 테니까 수업하러 가자고 해서 아웃라인도 짜주고 가끔 활동했어요. 그러다가 북구청에서 커피 바리스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그것도 배우고, 시니어 강사 자격증도 따고, 또 재봉도 배웠어요.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내일배움카드로 패션 디자인 수업을 여덟 달 동안 받았죠. 손녀 옷도 만들어줄 수 있고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여덟 달을 더 다녔어요. 하루도 안 빼먹고 병원 갔다 수업받으러 가고요.


대단하세요. 자격증이 저보다 많으신데요. 그러다 배리어프리 교육도 듣게 된 건가요?

뭔가를 배우면 시간이 잘 가요. 이것 저것 배우고 있으니까 아는 동생이 배리어프리 교육 한번 신청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장애인만 참여할 수 있다고요. 합격했다고 해서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합격하지?’ 싶으면서도 정말 기뻤어요. 오리엔테이션 전날도 잠을 못 잤어요. 너무 좋아서요.


마치 소풍 가기 전날 밤처럼요. 뭐가 그렇게 좋았나요?

그동안은 프리로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채 일했잖아요. 문화재단 소속 강사가 된다는 게 참 좋았어요. 교육 가서 보니까 휠체어 타신 분도 있고, 다들 저보다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이분들도 이렇게 열심히 사시는구나. 난 아무것도 아니네..’하고 생각했어요. 지금 예순여섯 살인데, 백 살까진 아니더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뭐든지 배우려고 해요.


 △남구장애인복지관에서 효숙 씨가 배리어프리 강사로 처음 수업한 '쓰레기는 예쁘다'


오늘 수업한 프로그램이 '쓰레기는 예쁘다' 환경 관련 프로그램이네요?

작년에 환경공단에서 수업을 받은 적이 있어요. 평소에 저도 모르게 관급봉투에 버리는 비닐이 많았어요. 강의 중에 그렇게 버리는 비닐을 한 번만 씻어 말려서 분리 배출하면 이걸 압축시켜 사용할 수 있대요. 오수처리장도 가봤는데, 사람들이 변기에 버린 물티슈를 사람이 하나하나 들어가서 걸러야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나만이라도 환경을 좀 더 생각하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배리어프리 강의 준비할 때 주제가 환경, 음악, 미술 세 가지가 있었는데, 제가 환경을 하자고 했어요. 처음에는 천연 수세미를 만들까 했는데 계절이 수세미랑 안 맞더라고요. 고민하다가 쓰레기는 예쁘다해서 재활용품으로 뭔가 만들어서 쓰레기가 왜 예쁜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쓰레기를 버리자는 취지로 기획했어요. 그리고 12월 크리스마스니까 미니 트리 만들기를 해보자 한 거죠.


보니까 너무 예쁘더라고요. 다들 집에 가져가려고 하던데요?

병원에서 걸어오고 있는데 나무 막대를 누가 버려놨더라고요. 주워 와서 집에서 소품으로 만들어 봤어요. 괜찮은 것 같아서 멘토선생님께 보냈더니 좋다셔서 준비했죠. 준비물도 다 집에서 재활용한 과자 봉지, 플라스틱병, 병뚜껑 등이에요.

처음 수업을 시작할 때는 그냥 막대기와 쓰레기였는데 집에 걸어둘 수 있는 예쁜 소품이 되잖아요. 장애인분들과 수업하는 것도 너무 좋아요. 맑고 천진난만하고, 계속 궁금해하고 묻고요. 수업하고 나면 내가 재미있어요.


    

                                 △쓰레기를 재활용해서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봐요~

 

 

수업도 몸을 쓰는 거니까 몸에 무리가 가진 않나요?

엄청 아파요. 중증 환자에요.(웃음) 오늘도 수업을 오전, 오후로 두 번을 뛰니까 허리가 너무 아프더라고요. 두 해 전에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서 병원에 가보니까 심장으로 올라가는 혈관 90%가 막혔대요. 그래서 스탠트 시술을 바로 받았고, 당뇨도 앓고 있어서 지금 인슐린도 먹고 있고요. 백내장 수술도 했고, 어깨는 염증, 석회가 있대요. 몸에 정상인 곳이 별로 없죠?(웃음)


듣는 저도 걱정이 되는데, 가족들이 엄청 걱정하겠어요.

집에서는 못하게 하죠. 큰아들은 내가 벌 만큼 버는데 왜 일을 해?”하는데 엄마가 하는 일은 일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거야라고 말하죠. 제 나이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하루하루 새로 만나고 이야기하겠어요. 그게 너무 즐거워요. 그러니까 그래. 엄마가 그렇게 좋으면 해야지.”라고 하더라고요.

이 수업 말고도 무등복지관에서 느슨한이라고 어르신 대상 수업을 하고 있고요. 엠마우스복지관에서는 장애인들 대상으로 정리 정돈 수업하고요. 연말이라 특히 바쁘네요. 아침부터 준비해서 밤 늦게 집에 들어가도 너무 좋아요.

 

 

△무등복지관 느슨한수업에서 어르신들과 수세미 만들기 수업 중인 효숙 씨

 


즐거움이 아픔을 이기네요.

맞아요. 집에 오면 그때부터 아파요. 일할 때는 아픈 줄 모르죠. 저녁에 집 가서 딸한테 엄마 여기 아파, 저기가 아파해요. 그렇지만 집에 있으면 맨날 아프다고 하니까 나가야 해요.(웃음)


선생님에게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한지 공예, 정리 수납 등 가지고 있는 기술들이 있잖아요? 작은 거지만 그분들에게 뭔가 알려드리면, 느끼고 받아가면서 되게 행복해해요. 집에 가서 사용해보고 사진 찍어서 저한테 보내요. ‘선생님 오늘 만든 거 이렇게 썼어요~’ 그럴 때 보면 내가 참 잘하고 있구나 생각해요. 베풀 수 있음에 감사하고, 제 자신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남에게 베풀고 보람을 느끼고 행복한 것. 문화예술교육이란 그런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효숙 씨의 삶 그 자체가 문화예술교육이란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이 어디 쉽기만 한 일일까.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효숙 씨는 정말 80대에도 강사로 활동하고 있을 것 같다. 아픔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킨, 최고령자 현역 강사 효숙 씨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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