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라 가족들과 이 집 저 집에 모여 있다 보니, 한 배에서 나와도 생긴 것과 하는 일이 달라서 오묘하고 재밌었다. 당숙이 나란히 서있는데 형은 머리숱이 없고 얼굴이 둥글어 보름달 같고, 동생은 어제 지붕을 이은 초가처럼 머리털이 덥수룩하고 턱선이 굵었다. 잊을만하면 엄마에게 듣곤 했던 "한 어미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얼마 전엔 어린이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단체를 하나씩 찾아다녔는데, 다른 단체에서 같은 말이 나와서 신기했다. "애들을 매년 만나지만 항상 새로워요." 온갖 음식을 먹어보고 만들어서 요리왕이 된 백종원처럼, 내 집과 남의 집 어린이들을 숱하게 만났기에 '어린이왕'이라 불려도 마땅한 이들이 "어린이를 모른다"라고 고백한 셈인데 '아롱이다롱이'가 또다시 머리에 스쳤다.
한 배에서 나온 자식도 다른데, 같은 반에 앉아있는 초등학생, 도서관에 출근하는 취준생, 한 동네 사는 아줌마, 명퇴를 앞둔 아저씨, 노인복지관에 다니는 할머니, 파크골프장을 누비는 할아버지라고 해서 이들을 대강 어린이, 청년, 중년, 장년, 노년이라고 뭉뚱그려도 될까. 종이류, 플라스틱류, 캔류, 병류로 경쾌하게 분리배출하듯이 사람을 대강 나이, 성별, 지역, 국적, 학력, 직업, 장애, 소득에 따라 척척 분류하는 게 맞을까.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서 교육대상은 이렇게 깔끔하게 나뉘어있지만, 사실 우리는 아롱이다롱이를 만나는 중이다. 그러니까 이토록 괴로웁겠지.
이번 편지에는 천오백일 가까이 '자립준비청년'을 만나고 있는 '놀이요점빵'의 속엣말을 실었다. 뻔한 프로그램을 내밀고 휙 떠나는 그저 그런 단체가 되고 싶지 않고, 청년들이 특별한 교육대상이 아닌 같이 밥 먹는 친구로 남길 바라는 최태웅 기획자는 "기획은 잘 몰라도 사람을 알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책방 주인 윤샛별 님이 기획연재 《책 속에 니가 있다》를 시작한다, 사람을 알려고 노력하는 당신이 책 속에서 이상형을 만날 수 있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정해준 똑 부러진 교육대상이 아니라 내가 만나고 싶은 이상형을 찾아낼 수 있도록 이 책 저 책을 들이밀고자 한다. 첫 책은 인생 좀 아는 '큰언니'들의 이야기다.
또한 비엔날레의 계절이다. 미술 쌤 최행준 님은 광주비엔날레를 둘러보고 나서 "‘환경, 젠더, 육체와 영혼, 이민, 불평등, 삶과 죽음, 주류/비주류, 자연/문명’ 그동안 소리 죽여 지내던 존재들이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음을 알린다."라고 소감을 적었다. 우리가 만나야 할 아롱이다롱이, 들어야 할 목소리, 다뤄야 할 주제를 생각하게 한다.
방금 엄마에게 동그랗고 뾰족한 당숙들의 직업을 물으니 "둘 다 대기업 다니제."라고 한다. 에이, 왠지 재미없네. 아무튼 기언치 찾아내자, 우리들의 '아롱이다롱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