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편지]교육사에게 바치는 "이래라 저래라"
광OO
날짜 202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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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에게 바치는 "이래라 저래라"


박우주/문화기획자



낯선 곳으로의 시작을 앞둔 요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익혀야 할 것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지금 사는 곳과 그리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몹시 흥분되고 설레는지 모르겠다. 지난 몇 달간, 시골살이하고 싶다는 나에게 주변에서는 “뜬구름 잡는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해주었다. 좋다! 뜬구름이어도 좋으니 나는 일단 시작을 걷겠다는 마음이다.


여기, 시작을 걷고 있는 또 다른 이들이 있다. 각자가 품어온 예술교육을 구현해 보고자 광주의 다섯 기관에 문을 두드린 다섯 명의 문화예술교육사들이다. 나는 올해 오월부터 어떤 현장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들이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고 있는지 이야기 나누고 있다. 사실 만나러 갈 때마다 부담스럽기도 했다. 현장은 녹록지 않기에, “잘 좀 해봐요(용기 북돋우기)”, “이렇게 하는 방법도 있어요(사례 제시)”, “앞으로 이렇게 해야지요(제언)”라고 나의 말만 쏟아내진 않았는지 돌아오는 길마다 되뇌곤 했다. ‘컨설팅’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은암미술관 문화예술교육사, 강사와 교육프로그램 현장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청춘기획


   문화예술교육사들에게 건넨 세 가지 이야기


문화예술교육사(이하 교육사) 대부분은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했고, 문화예술교육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다양했다. 교수나 선배가 추천해 주어서 문화예술교육을 알게 되거나, 전공 분야에서 연주나 공연을 하다가 사람을 만나고 상대하는 문화예술교육이 재미있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교육이 재밌었어요.”라고 이야기한 교육사는 “해야 하는 공연을 위해 무대에 서 있기만 했다가, 나의 예술 전문성으로 다양한 층과 만나 열매를 맺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라고 밝혔다. 다들 한껏 기대하며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고 있다.


올해 광주문화재단 사업을 통해 교육사가 활동하는 일 년, 정확히 여덟 달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기획’을 펼치는 일이다. 오롯하게 자기 것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첫 현장 경험을 이야기할 때, ‘힘들었지만 내가 기획해 본 첫 문화예술교육이야.’라는 마음의 기획으로 남길 바랬다. 그 경험치가 앞으로의 행보를 위한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월 어느 날, 한 장의 종이에 담은 각자의 프로그램 계획을 나누던 자리에서 나는 세 가지 이야기를 건넸다.


“사람을 환대하기, 자신의 관점으로 기록하기,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우리의 일은 사람을 맞이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예술가, 학부모나 보호자, 기획자, 운영을 도와주는 사람들 모두에게 환대하는 마음이 중요함을 느꼈다. 특히, 현장 예술가들과 잘 소통해야 한다. 예술가들의 다소 무리한 요구, 혹은 어려운 작업을 거부하기보다 방법과 대안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헤아려 듣고 대화해야 한다. 참여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교육은 사람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힘을 갖는 묘한 것이다.


그리고 챙기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자신만의 관점으로 교육 현장을 스케치하고 기록하면 좋겠다. 연말에 컴퓨터 앞에서 정리하는 결과보고서 말고, 현장에서 예술가와 참여자들의 호흡도 담아보고, 문제나 어려움이 생겼을 때 풀어가는 과정과 참여자들의 대화를 엿듣고(?) 메모해도 좋다. 자신만의 주관적인 기록을 담아봤으면 한다. 이는 기획의 방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축적되면 책장에 꽂힌 결과보고서와 또 다른 자기 정리, 자기 작업물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교육 현장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실행 단계에서는 수십 장의 계획서에 쓰여있지 않은 현장의 언어와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멋있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기획하지 말고, 일을 위한 일을 도모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날 것의 문화예술교육을 맛보아야 한다. 어려움과 돌발 상황 모두 지우려 하지 말고 포장하려고도 하지 말았으면 한다. 온 감각으로 현장을 경험해 보자.


교육프로그램 진행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은암미술관 문수정 문화예술교육사 ⓒ청춘기획


   우리는 그들을 환대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정작 우리는 교육사들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는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 “대전에서 전체 연수를 받으면서 느꼈는데, 교육사들은 여전히 푸대접을 받는 것 같더라고요.”라고 나지막하게 뱉는 말에 마음이 꽤 무거웠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교육사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라고 생각했지만, 그보다도 현재 위치에서 동료로 인정받으며 일을 배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먼 미래보다는 지금 당장이 중요했다. 일하는 곳에서 그들을 동료로 바라봐주고 그들의 전문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기회를 주길 바라고 있었다. 대체로 현재 있는 데를 만족스러운 일터로 꼽았지만 여전히 인력 지원사업으로 생각하고 이들의 역량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곳도 있다. 문화예술교육사가 세상에 등장한 지 십 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환대하는 마음에 더하여, ‘교육사가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고 그들을 어떻게 도울지’에 대해 교육사를 맞이하는 기관에서 많이 토론했으면 좋겠다. 교육사 핵심 업무 중 하나인 기획 프로그램 운영에 기관의 특성과 환경을 반영하되, 때론 과감히 해볼 수 있게 허용하면 좋겠다. 한 교육사는 “늘 해오던 것 말고 새로 도전해 보는 것도 기관에 긍정이지 않을까요?”라고도 했다. 또, 교육사에게는 잘 다듬은 번듯한 기획안 보다, 어떤 호기심, 어떤 시선, 어떤 필요, 어떤 고민, 어떤 과정과 결과를 남길 것인지를 진득하게 생각해 보는 ‘궁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기획서 쓰기 위한 앞단의 과정 말이다. 이 과정에 기관이 함께해야 한다.


이 시기가 다소 부족해서인지, 계획서에 아름다운 말들은 넘쳐나는데 초보 기획자의 서투르되 생생한 말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나와 같은 경력직들은 알지 않는가? 언젠가는 궁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숙제하듯 해버리거나, 했던 것을 비슷하게 바꾸거나, 혹은 예상되는 결말을 안다며 쉽게 접거나, 대충 쉬운 방법을 선택해 버리는 ‘경력직들의 사춘기’가 온다는 것을……. 그래서 기관에서도 어떤 문화예술교육사를 만나서 어떤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지 내부에서 충분히 논의하면 좋겠다.



   섬세하게 가다듬어야 할 절반의 시간


넉 달이 지났고 넉 달 남았다. 남은 절반이 잘 흘러가도록 나 역시 손을 보태야 함은 물론이며, 사업을 지휘하는 문화예술교육팀도 그러하다. 절반의 시간 동안 준비한 각자의 기획 프로그램이 이제 막 닻을 올렸고, 이미 순항 중인 곳도 있다.


은암미술관은 예술을 통해 환경위기를 경험케 하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있어서 있는 자연과 우리' 를 진행하고 있다 ⓒ청춘기획


섬세한 행정이 필요한 때다. 이제 기획 프로그램이 시작되어 현장이 매주 바쁘게 돌아가고 있지만, 교육사들의 거침없는 항해를 잠시 늦추고 서로의 안녕을 묻는 정도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숙제를 쥐어주진 말자. 가벼운 커피 타임이면 충분하다. 끈끈한 네트워크보다는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느슨한 연결고리’쯤 될까? 아니, 이들에게는 연결고리조차도 부담스러울지 모르겠다.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지만 ‘느슨한 만남’이라고 해두겠다. 대신, 연말에 갈무리하는 자리는 꼭 필요하며, 이때 일 년의 성과를 발표하는 것뿐 아니라 다음 해, 다음 사람을 위한 실패담, 고충해결담, 사연 있는 참여자 발견담 등 성과 이면의 것도 꼭 들려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며 참고한 각종 보고서와 글, 교육사들의 인터뷰에서 문화예술교육사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봤기 때문이다.


“같은 일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 기분 좋을 수 있는 메커니즘을 찾지 못한다면 일은 고작해야 지겹고 귀찮으며 성가신 노동이 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일에 절대적인 성공 공식이란 없고, 최고의 콘텐츠란 것도 사실 없다. 오직 자신의 관점을 오롯이 녹여 일에 투영하는 것만이 지속가능하며, 다가오는 시대가 일과 관련하여 요구하는 최선의 능력이 아닐까 한다.” - 『좋은 기분』 중에서, 글쓴이 박정수(녹싸)


『좋은 기분』이란 책의 한 구절로 글을 맺는다. 아이스크림이 녹으면 못 먹게 되는 것처럼 인생도 현재에 충실하자는 마인드로 〈녹기 전에〉 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대표가 일과 삶을 돌보는 태도에 대하여 쓴 책이다. 앞에서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한 수많은 말을 쏟아낸 뒤 본질적인 이야기를 꺼냈는데,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다. 하지만 매해 여러 기관을 돌고 있는(대학 시절에 도서관 빈자리를 찾아 메뚜기처럼 돌아다녔던 내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다) 전국의 수많은 문화예술교육사가 스스로 기분 좋을 수 있는 메커니즘을 찾으며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서 있기를 바란다.






박우주 / 문화기획자
익산문화재단, 광주 대인예술시장 별장프로젝트 사업단을 거쳐 북구문화의집에 오래 몸담았다.
현재는 전남 구례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에 몰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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