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뜬구름 편지] 어린이는 없다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날짜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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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없다


임아영 / 뜬구름편지 편집위원



자주 들고 다니는 통통한 빨간 수첩이 있다. 정미정 대표를 만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자마자 가방에서 허겁지겁 그 수첩을 꺼냈다. ‘어디쯤이었더라.’ 한 장 한 장 넘기다 “11.4. 느티나무”라고 적은 페이지에서 딱 멈췄다.


2022년 11월 4일, 우리는 광주 남구 노대동에서 만났다. 문화예술교육 인큐베이팅 단체 ‘느티나무 탐험대’ 대표와 모니터링 담당자로서 마주 앉아 두 시간이 넘도록 신나게 떠들었다. 삼십여 년을 부자연스럽게 살아오다 산과 아이들 덕에 비로소 자연스러워진 그녀의 삶이 남의 것 같지 않았다. 듣는 귀는 코끼리만큼 커졌고, 받아 적는 손은 치타처럼 달렸다. 하지만 보고서에 채택할 수 없는 부지기수의 이야기는 결국 수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이 년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노대동에 있는 분적산 편백숲 평상 위에 마주 앉은 뒤 안부를 묻기 위해 여러 단어를 떠올리다가 ‘통계’를 골랐다.


올해 '예술시민배움터'에서 "어쩌다 숲속 미술관"을 열고, 동네 어린이들과 분적산을 누비는 '느티나무 탐험대' 정미정 대표를 찾아갔다. ⓒ청춘기획



   재작년엔 두 가지 일을 같이하고 있었는데, 통계 쪽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나.


여전히 통계 일도 하고 있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통계 연구소에 있다가 퇴직하고 벤처기업으로 옮겼는데 빨리 한꺼번에 일을 처리해야 했고 제때 퇴근하기 어려웠는데 대학원까지 다녔다. 서른 무렵이었는데 갑자기 미국 지사로 가라고 했고 새로운 공부와 영어까지 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었다.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왔고 회사와 학교를 접었다. 집에서 난리가 났지만 이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믿었고, 취미였던 바느질을 다시 하려고 염주동에 퀼트 공방을 열어 칠팔 년 정도 했다. 고집해서 통창을 냈는데 그때 처음으로 사계절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창 너머로 벚꽃, 은행잎, 눈송이 날리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공방을 정리했는데 전에 다녔던 연구소에서 다시 와달라고 해서 다니고 있다.



   우연히 생태교육을 했다고 들었다. “처음엔 민들레밖에 몰랐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공방을 하면서 서른다섯 살에 결혼했고 아들과 딸을 낳았다. 자식들이 결혼한 뒤 역할을 잃었다고 생각한 친정엄마는 한때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는데, 내내 헌신하며 살아온 엄마 인생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큰애가 알아듣지 못해도 “엄마는 엄마 인생을 살고, 너는 네 인생을 살아야 해.”라고 말하곤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애가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내가 할 몫이 있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안전한 곳인지 학생들은 행복한지 묻고 듣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부모회 활동을 열심히 했다.


아이들은 진남초등학교에 다녔는데 풀빛근린공원이 가깝다 보니 일 년에 네 번씩 건강 걷기 프로그램을 했다. 그때 엄마들이 안전지도를 했는데 그야말로 걷기만 했다. 그래서 엄마들이 강아지풀로 노는 법처럼 옛날 우리가 놀던 것 가르쳐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학교에서 지원해서 초등학생들에게 생태수업을 할 수 있었다. 민들레밖에 모르던 내게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마을과 학교의 어른들이 뜻을 모아 공부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귀한 사례라고 상도 받고 교육청에 가서 발표도 했다. 그렇게 ‘느티나무 탐험대’가 생겼다.



   육 년째 ‘느티나무 탐험대’로 활동하고 있는데 문화예술교육은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


재작년에 인큐베이팅 단체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때부터 다르게 사고할 수 있었다. 숲놀이하면서 미술도 하긴 했지만,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체계를 다시 고민했다. 처음엔 ‘자연물로 표현하면 하는 거고 말면 마는 거지’ 하고 끝났다면,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는 어떻게 하면 아이가 마음을 열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서서히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이래서 이 일을 계속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실은 나는 좋은 부모는 아니다. 이기적인 엄마인데 이 일을 하면서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까딱하면 옹고집스런 독재자로 살았을 텐데,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아들딸과 속 이야기를 주고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완전 T(성격 유형 검사 MBTI에서 ‘사고형’을 뜻하고 ‘감정형’과 대응함)인데, 이제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말을 한다. 내가 많이 변했다.



 처음엔 아이들이 풀, 나무, 벌레와 친해지기만을 바라다가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그들이 속마음을 드러내도록 돕다 보니 자신도 표현하는 법을 배우며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청춘기획



    ‘너를 변하게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가 바뀌었다’는 고백이 놀랍고 반갑다.

     어린이를 만나는 마음이 궁금하다.


아이들을 만날 때 그냥 아이 같은 마음이 된다. 올해는 “어쩌다 숲속 미술관”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전시를 보여주고 싶어서 동료들과 미리 광주시립미술관을 답사했다. 거기서 삼 층짜리 미끄럼틀을 봤다. 동료들은 놀라면서 “저기서 못 놀게 해야겠다.”라고 했는데 나는 “무슨 소리야. 놀이터에서 못 놀면 어디서 놀아. 위험한 놀이터가 진짜 놀이터지, 안전하면 재미없잖아. 안전하게 있을 거면 집에 있어야지. 그래서 어린이 보험 넣었잖아.”라고 했다. 아까 유치원 아이들 만나고 왔는데 같이 뛰어다니다가 넘어졌다. 어떻게 안 넘어지고 살 수가 있나, 넘어져야 일어나는 법을 아는데. 애들은 재밌으면 울다가도 툭툭 털고 일어나 또 논다.


‘느티나무 탐험대’는 모두 네 명인데 나는 아이들과 동료들 중간에 존재한다. 애들은 내가 어른 같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하지 말라는 소리도 안 하고, 어리거나 어른이라고 봐주는 거 없다고 하고, 이 안에선 모두 동등하다고 하니까 더 쉽게 어울렸나 보다.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동료들이 날 봐주고 채워줘서 지금까지 할 수 있었다. 냉철한 꿀벌 김선아, 풀 박사 솔방울 김유리, 정리대왕 클로버 박미라, 그리고 새로 온 대학생 선생님 이수아까지 우린 아주 다르지만 그래서 굴러갈 수 있었다.



걷다가 숲에서 주운 것들로 땅을 종이 삼아 모둠끼리 만다라를 그렸다. 새가 떨어뜨리고 간 깃털이 화룡점정했다. 숲이 내놓은 미술 재료는 다시 땅으로 돌아갔다. ⓒ느티나무탐험대



    마음에 남는 어린이가 있나.

인간 군상이 이렇게 다양하구나 하고 매번 느낀다. 다 다르다. 나는 아이를 아이로 보지 않고 하나의 인간, 현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라고 다르게 대접한 적이 별로 없다. 아이가 나한테 나쁜 말 하면 “너 때문에 기분 나빠서 나도 나쁜 말 할 거야.”라면서 티격태격하는데 어느 순간 둘이 딱 통한다. 그러면 아이가 속마음을 털어놓고, 내가 “힘들었겠네. 나 같아도 그랬겠다.”라며 동조한다. 집이나 학교가 아닌, 사방이 트여있는 숲이라서 마음이 더 쉽게 열리는 것 같다.

도서관 수업에 왔던 아이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살인자, 감옥’ 이런 단어를 툭툭 내뱉기도 했고, 잘 있다가 갑자기 화를 내니 아이들이 무서워했다. 그래서 내가 그 아이를 맡았다. 걔가 뭐라 뭐라 하면 나도 똑같이 “니가 내 말이나 들어?” 하면서 대거리했다. 하도 시끄러우니까 꿀벌(김선아)이 우리를 내쫓았고 계단에 나란히 앉아서 우리가 뭘 잘못했냐며 구시렁거렸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말을 나누게 됐다. “나도 탐험대 선생님들한테 맨날 혼나. 아무도 내 이야기를 안 들어줄 때 속상해.”라고 먼저 이야기하니까 그 애가 “친구들하고 너무 놀고 싶은데, 나를 싫어해요. 말만 하면 나한테 욕해요.”라고 털어놓더라. 그래서 누가 그랬냐고, 이름 적겠다고 씩씩대며 편들어주니 아이가 좀 누그러졌고 “살인자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싫고 무섭지. 너 같으면 안 무섭겠냐.”라고 친구들 마음을 슬쩍 전했다.

어느 날 아침에 그 아이가 커피를 쓱 내밀었다.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까 “아침마다 마시잖아요.”라고 하더라. 마지막 수업할 땐 그 애가 헤어지기 싫다면서 넘어가게 울었다. 다음 날 아이 엄마가 음료수를 주러 찾아와 날마다 도서관에 가고 싶어 했다고, 고맙다며 글썽였는데 쑥스러웠다. 받아줄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ADHD는 약 먹고 치료받아야 하는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을 몇 년 지켜보면서 절반 이상은 자연스레 나아질 수 있겠다고 믿게 됐다.


    짧고도 긴, 얕고도 깊은 육 년이었다. ‘느티나무 탐험대’로서 무얼 더 하고 싶은가.

파리만 날아다녀도 기겁을 하는 아이들에게 파리도 우리도 모두 자연 중 하나, 같은 생물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숲해설과 숲놀이를 시작했다. 나뭇가지랑 솔방울로 놀고 나무 숨소리와 물소리 듣게 했는데,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처럼 식물과 동물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아니고는 반응이나 변화를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숲에서 내 이야기를 꺼내고 여기에 힘든 것을 두고 갈 수 있길 바라게 됐다. 아이들에게 숲이 언제든 찾아오고 싶은 편안한 곳이길 바라다보니 ‘산림 치유’까지 생각하게 되더라.

좀 더 욕심을 부리면, 산림청에서 인가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되고 싶다. 그리고 제2의 ‘느티나무 탐험대’를 만드는 게 꿈이다. 지금 남구 효덕동에 있는 초등학교 일곱 군데에 수업하러 가는 데 우리 넷으로는 벅차다. 탐험대의 주제는 “우리 동네 숲에서 놀자”인데 뜻 맞는 이들이 곳곳에 탐험대를 만들면 협동조합을 꾸려 우리의 운영 방법을 전수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봉사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경제활동이어야 오래갈 수 있다. 나는 확장할 때라고 생각하는데 동료들은 그냥 소소하게 이대로 하길 바란다. 내 자만심인지 어쩐지 모르겠다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아이들이 숲에 와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고 여기에 힘든 것을 두고 갈 수 있길 바라게 됐다." ⓒ느티나무탐험대


   말에 말이 가지를 뻗어 이야기를 멈출 수가 없지만, 진짜 마지막 질문.
   어린이란 어떤 존재인가.

나에게 어린이란 존재는 없는데……. 나랑 숲에 가는 사람들은 모두 친구다. 나이가 적든 많든 국적이 어디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냥 진짜 우주를 구성하는 생물로 만난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는 없다”라는 그녀의 말에 마음이 환해졌다. 몸뚱이를 옭아맸던 굵은 밧줄을 내 손으로 툭 끊은 듯 해방감을 느꼈다. 우리는 편백숲을 빠져나와 아파트 숲에 다다랐다. 진공청소기가 멀크락을 빨아들이듯 그녀의 자동차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그녀는 나무가 이룬 숲과 사람들로 빽빽한 숲을 오갈 때 가지를 뻗어 올리고 뿌리를 넓힐 수 있는, 걸어 다니는 작은 느티나무 같았다.






임아영 / 뜬구름편지 편집위원, 송송포도농원 농부
전남 장성에 살고, 알아서 잘 자라는 세 아이와 포도를 굳이 "키운다"고 말하는 어설픈 엄마이자 초보 농부이며, 곳곳에서 땀 흘리는 활동가들을 말과 글로 응원하는 일을 하고 있고, 핑핑 돌아가는 머리와 달리 손과 발은 게을러빠져서 종종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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