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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니가 있다 - ②
이 땅에서 고군분투하며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윤샛별 / 독립서점 러브앤프리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게임이 있다. 자기소개를 몇 가지 진실과 한 가지 거짓으로 이야기하고 어떤 것이 거짓일지 맞추는 게임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나는 독립서점 사장이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나는 비혼주의자다.” 어떤 게 거짓일까. 그것은 당사자만 안다. 게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추리할 뿐이다. 거짓일 수도 있고, 진실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게임을 제목으로 쓴 소설이 있다. 김애란 작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 2024)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세 아이가 몇 가지우연한 계기를 통해 서로를 의식하기 시작한 후 서서히 가까워지며 잊을 수 없는 시기를 통과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세 아이의 만남은 교실 속 ‘자기소개 게임’에서 시작한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를 소개하면 되는데, 그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해.”(10쪽) 교실에서 이 법칙대로 자신을 소개하던 아이들은 거짓말에 비밀을 섞어가며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반려 도마뱀 용식과 살고 있는 지우. 지우가 노동 현장으로 떠난 사이 지우의 도마뱀을 맡아주기로 한 소리. 비극적인 사건으로 가족이 해체된 후 강아지 뭉치와 함께 있다 소리를 만난 적이 있는 채운. 세 명에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각각의 비밀이 있다.
소설은 사고로 엄마를 잃은 지우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같이 살던, 엄마의 애인 선호 아저씨에게 짐이 되기 싫어 여름방학 때 집을 떠나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했던 지우. 우여곡절 끝에 선호 아저씨의 화물차 조수석에 앉아 집으로 가는 길, 아저씨는 지우에게 자기소개 게임을 같이 하자고 한다. 선호 아저씨의 자기소개는 “나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다.” “나는 아버지가 일찍 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직장에서 잘리지 않으려고 동료를 배반한 적이 있다.” “나는 너희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나는 너랑 살게 되어 기쁘다.” 선호 아저씨는 이 중 무엇이 거짓 같냐고 물어보지만 실은 모두 진심이다. 휴대전화 진동음이 연이어 울렸고 지우는 채운과 소리의 메시지를 받는다. 지우는 언젠가 작문 시간에 국어 선생님이 읽어준 시 한 구절을 떠올린다. “꿈에서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돌아왔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문학동네, 2024) ⓒ윤샛별
작가의 말에서 김애란은 “삶은 가차 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소설 속 아이들은 가난과 폭력, 죽음, 비극적 사건을 맞이하는 거짓말 같은 상황을 연이어 맞닥뜨리고,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다음으로 한 걸음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갖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을 독자들. 거짓 같은 진실과 비밀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도 위로한다. 작가는 문학이 어떻게 사람을 위로하는지를 소설로 이야기한다.
거짓 같은 진실을 가지고 있는 현실 속 이야기를 담은 또 다른 책이 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강지나, 돌베개, 2023)이다. 책 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울렁이기도, 쓰라리기도 하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돌베개, 2023) ⓒ윤샛별
책의 출판 배경이 독특하다. 이십 년 넘게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초임 교사 시절, 며칠째 학교에 오지 않은 학생의 집에 가보았다. 학생은 동생과 함께 할머니 집에 살고 있었고, 아버지는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자기 아들이 빌려 간 돈을 갚지 않은 데 앙심을 품고 손자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형제의 삶은 안전하지 않았지만 법으로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돕거나 보호할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한 뒤 가난한 학생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했다. 박사학위논문 『빈곤 대물림 가족 청소년의 대응 기제』를 준비하면서 이십여 명의 청소년과 가족들을 만났고 논문을 끝낸 뒤로도 이들의 삶을 계속 따라가면서 책을 쓰게 됐다. “가난을 둘러싼 겹겹의 현실을 철저히 ‘증언’하고 ‘폭로’한다. 가족 문제와 진로 고민, 우울증, 탈학교, 가출과 범죄, 그리고 사회 진출과 성인으로서의 자립, 청(소)년의 노동 경험 등의 심층적인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록하며, 마지막에는 교육, 노동, 복지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과 제안으로 나아간다.” 책에 실린 여덟 명의 인물들은 현재는 성인이 되었다. 서너 해에 한 번씩 만나 세 차례 이상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십 년이 흘렀다. 제자들 앞에서 절대 무력해지지 않으려는 한 교사의 책임감이 기록으로 탄생한 거다.
"가난에서 벗어난 이들에겐 ‘성찰하는 힘’이 있었다. 가난한 청소년들은 생존을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를 인식하면서 성찰하는 힘을 길러 왔을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윤샛별
여덟 명의 인터뷰 중 슈퍼 긍정 에너지를 가진 ‘지현’이라는 인물을 관심 있게 보았다. 십 년 동안 그녀가 가난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볼 수 있었다. 지현은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수십 차례 이사 다녔고, 식당과 청소 일로 생계를 꾸리는 어머니 밑에서 동생과 자랐다. 지현이 일곱 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사고로 전신 마비가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정신장애 3급이 되었다. 경제적, 사회적 기반이 전혀 없는 지현네 가족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의지할 자원이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가족이라는 동력이 있었고, 강인한 어머니의 힘이 있었다. “가난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일 뿐이지, 내 잘못도 죄도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82쪽) 간파한 지현은 전략적으로 자원을 활용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다녔던 지역아동센터가 주요한 역할을 했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자신을 도와줄 복지 기관들을 찾아다녔다. 가난한 환경에서 가슴 뜨겁게 살아왔던 지현은 대학 졸업 후 종합사회복지기관에서 일했고,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그렇게 자기 가족이 생겼고 새 가족 안에서 행복과 미래를 꿈꾸고 있다.
빈곤의 대물림, 빈곤한 가정의 아이들의 어른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저자는 지현의 사례에서 어떤 힘을 발견했을까. 수많은 청소년 인터뷰에서 드러났듯 가난에서 벗어난 이들에겐 ‘성찰하는 힘’이 있었다. 가난한 청소년들은 생존을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를 인식하면서 성찰하는 힘을 길러 왔을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힘은 짧은 기간 안에 만들어질 수도 없고 단순하고 안전한 삶의 궤적 안에서도 형성되기 어렵다고 한다. 다양한 경험과 시도 좌절 고통, 성취 등의 단계를 거쳐야 서서히 생겨나는 힘이다.
지현의 청소년기에 큰 힘이 됐던 건, 지역아동센터였다. 지현의 경험담은 이렇다. “이곳에 다닌 아이들은 센터를 공부방이자 가족이자 놀이터로 생각했다. 학교 친구들이 학교 후에 학원이나 집으로 갈 때 아이들은 이곳에 와서 공부도 하고 여러 생태 문화 체험도 하고 밥도 먹고 친구들과 공도 차면서 시간을 보냈다. 방학에는 멀리 바닷가로 캠핑도 가고 센터에서 하룻밤 자는 파자마 파티도 했다. 졸업생들은 하나같이 이 센터에서 경험할 기억들을 좋은 추억으로 생각했다. 졸업생 중 한 명은 고등학교 때도 센터에 다녔다면 자신의 삶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93쪽)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앞서 소개한 이야기들을 대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애란 작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 속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 세 명의 이야기에서, 강지나 작가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에 등장하는 청소년과 어른들의 이야기에서 말이다. 나는 ‘러브앤프리’를 찾는 청년들을 떠올린다. 저녁 일곱 시, 퇴근길 또는 하굣길에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친구들과 놀러 가지 않고,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주황빛 전등을 켠 오래된 건물에 모여 ‘책’으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모이는 청년들이 있다. 그러면 나도 그들이 무엇을 경험하도록 도와야 할지, 그들을 어떻게 위로할지 생각하며 함께 책을 펼친다. 더 넓게 사고하게 하는 것, 더 멀리 보게 하는 것, 나아가는 길의 초입을 밝혀주는 것, 책이 그렇다.
*글의 제목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의 머리글 마지막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