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뜬구름 편지] 울타리를 넘는 예술가들
광OO
날짜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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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를 넘는 예술가들 

오다가다 대충 보는 마고 타로와 함께



쌍쌍 : 추말숙이 묻고 노은영, 강철이 답하다



나는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노은영과 강철, 작가이자 문화예술교육자인 이들을 만나러 갔을까?

두 사람은 광주문화재단 ‘창의예술교육 LAB’ 활동 중 나와 팀은 다르지만 두 해 동안 같은 공간에서 회의하고 입학도 졸업도 같이한, 말하자면 연구·실험자로서 동문수학한 사이다. 그들이 내 시야에 들어온 때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예술인 행동 場’이 열렸던 2024년 4월 16일 5·18 민주광장에서였다. 인터뷰하겠다 맘먹고 먼저 떠오른 건 광장에서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주었던 노은영 작가였다. 그리고 강철 작가는 그의 사진 작품이 워낙 좋아 관심을 두었다가, 민주광장에 카메라를 들고 온 걸 보고 반가워서 그만 들입다, “마땅한 프로필 사진이 없어서 그러는데, 근접 샷 좀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을 걸었는데 좀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둘을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냥 오다가다 만난 것 같은데, 아니다. 작가에서 문화예술교육가로, 울타리를 넘기 시작한 그들이 꽤 궁금했다. 말 한마디 붙여보고 싶었다.



 타로인가?

(나의 예술 도구는 연극이지만) 타로 카드를 들고 간 까닭은 최근에 배웠기 때문이다. 익혀보니 타로에는 인생에 대한 크나큰 조언이 있었다. 언제까지 좋은 것도 언제까지 나쁜 것도 없다는 인생의 진리가 담겨 있었다. 배우가 관객의 생각이나 관점을 바꿀 수도 있는 대리 발언자인 것처럼 타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주는 목소리라서 내가 하는 연극과 닮은 구석이 있기도 하다. 여하튼 믿거나 말거나, 재밌어하거나 놀라워하면서 타로를 보았다. 강 작가는 ‘오늘 하루’를 물었고 노 작가는 ‘나의 예술 인생’에 대해 궁금해하며 세 장의 카드를 뽑았다. 



작가에서 문화예술교육가로, 울타리를 넘기 시작한 그들에게 연극과 닮은 구석이 있는 타로로 말 한마디 붙여보고 싶었다



   예술을 시작한 계기

노은영 : 엄마가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해서 반항도 많이 했어요. 나는 화면 안에 있어야 자유롭고 감정에 충실하게 되더라고요. 주입해 가르치고 정답을 찾는 공부는 자유롭지 않았어요.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그림이었고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강 철 : 아버지가 두세 달 치 월급을 투자해서 필름카메라를 샀어요. 다섯 살 생일에 막내가 태어났는데, 막내를 찍어 주려고요. 그때 사진을 다시 보니까 아버지는 항상 카메라 뒤에 있더라고요. 자녀 사랑이 유달랐죠. 동생은 아버지를 닮아 사진작가가 되었고, 나는 아버지의 얼리 어답터 기질을 이어받았어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진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느낀 보람과 고민
추말숙 : 저는 배우지만 문화예술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예술을 하는 것과 문화예술교육은 차이가 있는 듯해요. 저는 가르치는 것을 더 잘하더라고요. 두 분은 문화예술교육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노은영 :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로’ 사업 때문이었어요. 누굴 가르쳐본 적은 없었는데 마을 활동하면서 발산마을 할머니들 교육을 맡았고 할머니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니 가르칠 것 보다 배울 게 더 많다고 깨달았어요. 서툴지만 다 채우려 하진 않았어요. 실력과 테크닉은 부족하지만, 오히려 부족하고 서툴러서 좋아 보이더라고요. 

강 철 : 교수님이 추천해 의사, 교수, 사진작가 셋이 미술치료 비슷한 것을 하려고 마을에 들어갔을 때였는데요. 마을 분들에게 사진 찍는 법을 알려주고 상담도 했어요. 저는 거기에서 기록자였고, 검은 옷을 입고 ‘제3의 눈’ 역할을 하면서 마치 유령처럼 움직여야 했어요. 해리포터의 투명 망토를 갖고 싶었던 기억이 나네요. 
말하다 보니 어르신과 정신과 의사가 같이 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네요. 요즘엔 모두 아주 좋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잖아요.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언제든 누구든 이것으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어르신들이 손이 떨려서 선이 삐뚤빼뚤하고 아무렇게나 그린 것처럼 보여도 서사가 그대로 드러나는 걸 보고 예술은 나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문화예술교육을 어떻게 해왔는지, 기억나는 장면과 사람은
노은영 : 수업에서 뭔가를 가르치지만 그게 정답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알려드릴 게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교육’이라는 게 뭘까? 기술을 가르치는 것 말고 또 다른 무엇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게 뭔지 모르겠고 어려워요. 

추말숙 : 저도 드로잉을 배웠는데 선을 긋는 몇 가지 방법을 배우고 난 다음엔 내 몫이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혼자 계속한다고 진도가 나가진 않지요. 그래서 선생님을 만나 배워야 해요. 과제가 있으니까 그리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문화예술교육 강사들이 큰 몫을 하고 있지요. 

노은영 : 대학 1학년, 유화 수업을 할 때 선생님이 손봐주면 왠지 그게 좋아 보여서 그대로 따라 그리곤 했어요. ‘부족함’을 만지지 않고 그대로 두면 ‘좋은 그림’이 됩니다. 발산마을 어르신을 교육할 때 그분들 손이 떨려서 선이 삐뚤빼뚤했는데요. 아무렇게나 그린 듯 보여도 어르신의 ‘서사’가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대단했어요. 예술은 나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철 : 저는 가르치면서 배우고 있고요. 학생이 저를 통해 사진을 접하고, 진학해서 사진을 전공하면 제일 보람차지요. 실은 제가 제빵사이기도 해서 내년에는 학생들이랑 빵 만들어 먹으면서 사진 수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디지털카메라는 누구나 다루기 쉽지만, 사진을 남긴다는 느낌이 없어요. 그래서 작은 인화기를 가져가 소중한 추억을 바로 보여 주려고 하고요.

노은영 : 강철 작가는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고 뽑아서 주거든요. 사진 받을 일을 기대하면서 선생님과 만난 순간을 기억하게 되더라고요.

강 철 :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사진은 나의 보조기억 장치’라고 합니다. 가끔 꺼내보면 그때 추억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추말숙 : 그렇죠. 더구나 문화예술교육은 우리가 쭉 예술 활동을 하도록 돕는 밑천이자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정부나 지자체 예산을 따서 예술 활동을 하게 되면 더욱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두 분은 지원금도 받고 그러시지요? 

노은영 : 네, 그럼요. 그래서 먹고살 만합니다. 창작 지원금으로 2년마다 5백만 원이 나오고 공모전도 꾸준히 하고 미술관에 그림 들어가고 하면 작가 페이를 주니까 배고프게 힘들지는 않아요, ‘예술로’ 활동도 하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지원금 부자이지요. 저는 전업으로 예술 활동을 하면서도 수입이 있으니 계속 미술을 생각할 수 있어요.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도, 내 예술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해요. 
결국, 모든 줄기가 나를 찾는 과정이니 이도 저도 다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어렸을 때는 “미술로는 불가능하다”라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는데, 이젠 “이거 되는 거구나”라고 합니다.

강  철 : 전과 비교하면 좋아요. ‘알바천국’이라 할 정도로 안 해본 일이 없었어요. 누가 권해서 1종 대형 트레일러도 따고, 화물차 새벽 알바도 했는데 너무 위험해서 지금은 안 합니다. 지금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고, 사진을 더 활동적으로 찍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업실이 없어서 다시 차리고 싶은 욕심이 있고, 뭐 그 정도입니다. 작업실 차리면 초대하고 싶은 분이 노은영 작가와 제 사부님이고요. 

   "제가 제빵사이기도 해서 내년엔 학생들이랑 빵 만들어 먹으면서 사진 수업을 하면 좋겠어요"


   예술가로서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강 철 : 가르치는 것 같아도 실은 그들에게서 배우게 돼요. 아이들과 거의 놉니다. 대학 시간강사 나가서 잘 못 가르치면 ‘틀렸다’고 댓글이 게시판에 올라오죠. 그런데 고등학교 수업은 훨씬 재밌어요. 어르신 사진 심리치료 할 때, 그분이 하는 말과 행동에서 배우기도 하고요. 누가 한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권할 겁니다. “너의 지식을 주려 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배우고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라!”라고요.

노은영 : 다른 시각에서 서로서로 배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르친다 하지 말고 나도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작업하는 이들이 자기 안에 갇히는 경우가 많으니 내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문화예술교육을 하셔야지요. ‘이거 봐! 다른 게 많아! 왜 네가 친 울타리 안에만 있어?’ 이런 느낌이 들어요.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내가 하는 예술에 더욱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저는 많이 느꼈습니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공부하려고 하지 말라!”
문화예술교육은 이런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싶다면 문화예술교육을 해야죠"

 
인터뷰는 이렇게 끝났다. 두 작가는 어릴 때 꿈을 고스란히 들고 와 지금에 이르렀고, 서로를 가장 중요한 곳에 초대하고 싶어 하는 동료가 되었다. 그림과 사진은 가깝고도 먼 예술 장르이지만 두 작가는 같이 밥과 술을 나눠 먹었던 사이고, 변함없이 서로의 작업을 응원하는 사이다. 라임을 맞춰보면 “문화예술교육 강사와 대상자는 서로를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하는 사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강철 작가와 노은영 작가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울타리를 넘으려 하는 타고난 창작자들이었다. 

헤어진 다음 날 들려온 반가운 소식. 함께 봤던 타로카드가 말했듯이, 노은영 작가는 3년 동안 도전했던 공모전에 선정되었다. 그녀의 카드엔 금화가 열린 포도나무가, 강 작가의 것엔 컵과 물고기가 있었다. 수확의 계절이 코앞에 있는 걸까.

오다가다 대충 보는 마고 타로〉는 이렇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처럼 쓩~~~~
(feat: 해리포터의 투명 망토를 걸쳐 입고서)


사진 : 조수현



     
    추말숙 / 문화예술교육공동체 연나무 대표 
    스스로가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늘 문화예술 교육을 받으러 다니는 손 꼼지락거리기 좋아하는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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