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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은 알아도 잡색은 몰랐지
정재일 / 사단법인 전통연희놀이연구소 대표
붕 뜬-구름 편지
갈 수 없는 뜬구름을 잡고 허둥대는 허황된 도전이 되어 버리고 있는 것일까?
파란 하늘에 뜬 구름처럼 내 꿈도 이제 희망을 찾아 하늘을 나는, 붕 뜬 구름일까?
광산농악의 잡색교육을 하겠다고 오랜 시간 고민하고, 그 고민의 과정에서 광주문화예술교육 ‘버라어어티 농악 만들기’에 도전한 광주광역시 무형유산 광산농악 이수자이며, (사)광산농악보존회 사무국장을 맡은 한석중 씨를 만났다. 그에게 그간의 뜬구름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물어본다.
광산농악의 잡색교육을 하겠다고 오랜 시간 고민하고, 그 고민의 과정에서 예술시민배움터 ‘버라어어티 농악 만들기’를 이 년 째 운영 중인 (사)광산농악보존회 ⓒ청춘기획
굿과 관객을 연결하던 잡색이 사라지고 있다
농악은 많은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정월에는 한 해를 시작하고 마을과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고 벽사의식을 할 때는 당산굿, 액막이굿. 농사를 지을 때는 풍장굿, 두레굿, 만드리굿. 마을 사람들이 놀고 소원을 빌 때는 백중굿, 도깨비굿. 마을 사람들에게 서로의 화합을 도모할 때는 도둑잽이굿. 마을의 행사를 위해 돈을 모을 때는 걸궁굿 등 때와 장소, 시기, 목적 등에 따라 다양하게 불렸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한 가마에 담으려는 시도가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농악에서는 악기의 연주와 놀이, 노래, 극 등이 성행했습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공연하고, 발표회와 대회를 하는 동안 연주만 남고 대부분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특히 잡색(가장假裝을 하고 농악대에 가담하여 섞여 놀이를 펼치는 연행자/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어르신들이 작고하시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살아 있을 때는 영광, 장성, 고창, 함평 등 인근 지역에 굿판이 열리면 가셔서 잡색에 참여하셨습니다. 잡색을 하면서 관객과 소통하고 이야기를 전하며 악기연주자들이 하지 못하는 부분 즉, 굿과 관객을 연결하고 관객이 굿에서 어울려 놀 수 있도록 안내하면서 굿을 풍성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역할을 다음 세대가 잇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어 교육이 절실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잡색을 되살릴 수 있는지 박병주 이사장 님을 비롯하여 (사)광산농악보존회 안에서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잡색은 굿과 관객을 연결하고 관객이 굿에서 어울려 놀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로, 어떻게 하면 잡색을 되살릴 수 있는지 많은 고민을 해왔다 ⓒ청춘기획
노래, 춤, 극, 탈, 소품을 갖춰 2023년에 문화예술교육으로 시작했다
잡색은 기본적으로 춤을 추고 재담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탈춤의 형식과 비슷합니다. 광주에서 탈춤을 추고 있는 사)전통연희놀이연구소의 정재일 씨에게 잡색 교육을 같이하자고 요청하였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서로가 각자 하는 일이 있기에 같이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는데 우연히 지리산학생교육원에 입소하는 학생들에게 전통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같이 숙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이 끝나고 밤이 되면 광산농악 비디오를 틀고 어르신들이 추었던 잡색놀이를 보면서 반복되는 동작을 찾아내고 이를 모아서 기본 춤을 만들었습니다. 광산농악 발림굿에서 잡색들이 나와서 한바탕 노는데 이때 잡색들이 같이 출 수 있는 기본춤을 만들어 2022년 여름에 교육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확대하여 광주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도전하여 2023년, 2024년 “만들고, 춤추고, 연기하는 버라이어티 농악 만들기”를 진행했습니다.
탈을 만들기 위해 조각하는 김창욱 님, 모자와 소품을 만들기 위해 보존회 전수 조교인 김양균 님과 회원인 한승철 님, 춤을 익히기 위해 정재일 님, 노래와 극은 판소리를 하는 박해라 님을 모셔서 과정을 구성하였습니다. 첫해에 탈 만들기, 대사, 노래, 춤을 익히고, 두 번째 해에는 소품을 중심으로 모자, 장신구를 만들고 배역을 분석하고, 배역에 적합한 동작과 다 같이 부르는 노래를 익혀 2024년 아트날라리 “안녕~ 히어로”에서 발표했습니다.
11월 2일 광주문화예술교육축제 아트날라리에서 진행된 잡색극 ⓒ(사)광산농악보존회
세 가지 성과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광산농악의 활성화입니다. 이런 활동으로 광산농악보존회 회원으로 들어오신 분이 일곱 분이 있습니다. 이들의 참여는 광산농악의 잡색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습니다. 보존회에서 문화재청과 광산구청의 지원으로 “사시사철 굿이여” 프로그램으로 4월 액막이굿, 5월 버라이어티 연희쇼, 6월 도깨비굿, 8월 만드리굿, 9월 GOOD 시장, 10월 도둑잽이굿을 진행하는데 잡색놀이가 풍부해지면서 농악이 가지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참여자들의 자부심입니다. 참여자들이 만든 탈과 모자, 소도구들을 가지고 잡색놀이를 하면서 자부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탈과 소품을 소중히 대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애정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애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존회 활동에 참여하고, 전통예술을 보존하고 가꾸어가는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이 주는 뿌듯함과 소속감, 자신이 하는 역할이 있다는 자존감 등 이런 것들이 생기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직접 만든 탈과 모자, 소도구들을 가지고 잡색놀이를 하면서 즐거움과 자부심이 생겼다 ⓒ(사)광산농악보존회
개인적으로는 다른 농악과 달리 광산농악에서 활발했던 잡색놀이를 재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앞으로 기대됩니다. 뜬구름같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던 “버라이어티 농악 만들기”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드디어 뜨고 있는 구름 아니 앞으로 대중들에게 뜬 구름이 되어 예전의 어르신들이 이룬 잡색놀이처럼 광산농악을 풍성하게 해 줄 것입니다. 뜬구름 같은 희망이 구체화되고 있어 잡색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잡색 교육은 더 섬세해지려 한다
더욱 섬세하게 각 배역의 내용과 춤, 노래, 재담 등을 구성하고자 합니다. 단막극처럼 이루어진 잡색놀이가 각 악기의 구정(개인)놀이처럼 공연될 수 있도록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합니다. 그래서 광산농악을 보다 풍성하게 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잡색이 본디 그러하였듯, 굿과 관객을 연결하는 가교가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자신을 낮추어 관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관객과 같이 놀이를 함으로써 전통예술이 가지는 공동체의 즐거움을 느낄 기회를 제공하여 전통예술이 더욱 발전하고 대중들과 삶을 함께 하는 예술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예술시민배움터 “버라이어티 농악 만들기” 잡색극을 통하여 관객 같이 놀이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공유하길 바라는 정재일 대표(왼)와 한석중 사무국장(오) ⓒ청춘기획
문화예술교육으로서 잡색 교육은 자유와 자존이다
농악에서 잡색은 다른 문화유산과 달리 활성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표현에 제약이 없습니다. 배역을 맡은 사람이 자신의 배역을 표현하는데 어느 누구의 지시 없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농악 안에서 등장과 퇴장이 자유로우며, 관객과의 소통도 자유롭습니다. 어떠한 기능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공연마다 그 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욕구를 관객과 소통하면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나만의 독특한 표현을 통해 관객과 즐거움을 느끼고 공유하면서 자존감, 자신감을 심어줄 것입니다.
따라서 “버라이어티 농악 만들기”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유형의 자산을 만들어 내지만 또한 문화예술교육을 함으로써 무형의 가치를 인간의 내면에 형성하게 해 줄 수 있는 중요한 활동입니다. 문화예술교육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유무형의 자산을 남기고 있습니다.
쿠키 같은 이야기
“저 제주도입니다.”
11월 2일에 광주문화예술교육 축제 ‘아트날라리’가 열렸습니다. 잡색극을 발표하는 날이었지요. 그런데 한 분이 하루 전에 전화했어요. 제주도에 있다고, 배표를 구하려는 데 폭풍으로 배편이 없다고, 비행기 표도 없다고요. 제가 부랴부랴 그분 역할을 준비했는데 공연 날 아침 8시에 비행기를 취소한 사람이 있어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무사히 발표했습니다.
“부채에 쓰여있는 것은 뭔가요?”
부채를 들고 배역을 하시는 분이 발표회 때 긴장해서 대사를 잃어버리고 못 할까 봐 자신의 대사를 전부 종이에 써서 부채에 붙이고 발표회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대사를 까먹지 않아 무사히 공연을 마쳤답니다.
정재일 / 사단법인 전통연희놀이연구소 대표이사
놀이에서 예술로, 예술을 교육으로
놀이가 예술이 되고, 예술은 교육되어지며, 교육되어진 것이 놀이가 된다.
놀이•예술•교육을 통하여 인간의 내면에 다양한 가치(사회, 문화, 예술, 인성, 창의 등)를 내면화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