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뜬구름 편지] 십 년 후, 연숙의 마음
광OO
날짜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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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시범사업 《경자 씨와 재봉틀》, 그 후 십 년



기획기사


문화예술교육의 참여자,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십 년 후, 연숙의 마음




2014년 ‘한 사람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콘셉트로 당시 기획자였던 임아영 씨 어머니의 이름과 꿈에서 착안한 《경자 씨와 재봉틀》이라는 노인문화예술교육 시범 프로그램을 한 바 있다. 기획자, 연구자, 강사로 참여한 모두가 꿈을 가진 자아, 여성, 한 사람이기도 한 엄마에 대해 때마침 여러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한 명 한 명에 주목하며 그들의 꿈을 응원하는 마음을 모아 기획하고 연구했다. 《경자 씨와 재봉틀》에 참여했던 열 명의 경자 씨들은 십 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늘 마음 한편에 궁금증이 있었다.


오월의 푸르름. 안마당에 있는 감나무의 초록 잎 새로 비춰드는 햇빛과 바람이 좋던, 김연숙 씨의 산수동 집을 방문했다. 몇 년 전 그녀의 네 딸이 주택을 새집처럼 리노베이션하면서 연숙 씨는 소원을 풀었고 집은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결혼 후 사십여 년 살아온 이곳에서 그녀는 사촌의 사촌들과 시어머니의 가족을 거두고 네 딸을 키워냈다. 오늘 우리는 연숙 씨의 아이디어로 만든 대문 옆의 작은 마루 ‘숙다방(연숙 씨 표현이다)’에 앉았다.



                                                                                                                                                               연숙 씨네 마당에 있는 '숙다방'. 네 딸이 사십 년된 집을 고쳐 엄마에게 바쳤다 



    안녕하셨어요! 《경자 씨와 재봉틀》로 만나 뵌 지 벌써 십 년이 흘렀어요. 예전 모습 그대로예요. 갑자기 연락해서 만나 뵙고 싶다고 했는데도 수락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때가 좀 기억나시는지요.

그럼요. 같이 참여했던 정연임 씨, 신영희 씨, 당시 마흔이었던 은영 씨 등 다 생각나요. 다들 어떻게 지내실지 궁금하네요. 집을 고치면서 딸아이들이 책을 모두 정리했는데, 《경자 씨와 재봉틀》 자료집은 남겨두었더라고요. 어떻게 우리 집에 찾아올 생각을 했을까. 기억해주고 찾아주어 고마워요.



    먼저 연숙 씨 소개를 부탁드려요.

1952년생 김연숙이라고 합니다. 산수동 조그만 집에서 사십 년간 살고 있습니다. 백 퍼센트 만족하진 않지만, 만족스럽게 살고 있으니 매일 날마다 행복합니다.

네 자녀 모두 결혼해서 자기 할 일 하며 잘살고 있고, 남편과 나 모두 건강해서 대한민국 어느 산이든 갈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요. 남한테 손 벌리지 않을 정도로 살고 있고요. 나는 보통 사람으로 살기를 원했어요. 재력이 있거나 가방끈이 긴 것도 아니라 일등을 원하진 않았지요.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으로 살기 원했고 그렇게 살고 있어요. 부모가 주신 건강한 몸으로 봉사할 수 있는 한 봉사하면서 남과 더불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리 살고 있어요. 가지고 있는 지식은 짧지만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어요. 지금은 더이상 바랄 것이 없네요.



    처음 뵀을 때 예순둘이셨으니 지금은 일흔둘이시네요. 그동안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십 년 전만 해도 아직 넷째 딸 학업·취업·결혼이 남아있어서, 아이 돌보미 일을 계속해야 했어요. 지금은 네 아이 모두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고 있고, 지금은 정신적, 물질적, 시간적으로 가장 여유 있는 때예요. 집 바꾸는 것이 오랜 소원이었는데, 사 년 전 집을 고치면서 소원을 이루었고요. 버릴 것은 버리면서 꼭 필요한 것만 두고 살아요. 나이가 들수록 비워내야 하고, 이제는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때이니 물질 욕심 버리고 오직 내 마음 평온을 위해서 좋은 책 들여다보고 좋은 음악 듣고 소소하게 음식 만들어 주변에 나누고 돌보고 그렇게 살지요. 이 공간이 변하면서 내게도 큰 변화가 일어났어요. 인생 숙제, 모든 게 정리된 기분이었고요. 이 집을 엄마 품 같은 집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내가 해줄 것은 없지만 아무 때나 와서 쉬었다 가라. 언제든 오너라. 자식들뿐 아니라 누가 와도 김치와 밥은 줄 수 있으니, 언제나 대환영이다.” 그런 맘으로 살고 있어요.


"지금은 더이상 바랄 것이 없네요."라며 환히 웃는 연숙 씨



    누구나 와서 밥 먹고 가라고 할 수 있는 그런 품을 갖고 싶어요.

갖추어서 손님 맞으려 하지 마요.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마요. 그럼 머리 무겁잖아. 무리해서 하면 머리 아프지……. 그것도 욕심이야. 잘 하려는 욕심, 멋있게 하려는 욕심을 버리면 돼요.



   《경자 씨와 재봉틀》에 참여하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요.

당시 심리극을 하면서 마음속 사랑하는 사람을 끄집어내서 말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에 오래 남아요. 살면서 누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도 없었고, 나도 말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표현하고 연극하면서 ‘나한테도 이런 감정들이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1박 2일로 담양 창평에 가서 음악 듣고 시골길 걷고……. 그땐 그런 여유로움을 가져 본 적이 없었지요. 항상 바쁘고 경제적으로든 뭐든 쫓기며 살았으니까. 그 계기로 나를 돌아볼 수 있었어요. 그 프로그램 경험하면서 앞으로 나를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절실하게 느꼈네요.


가족을 위해서 항상 희생만 하며 살았어요. ‘나’를 모르고 항상 남에게 봉사만 하고,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살았죠. ‘썩을 삭신’이라며 나를 굉장히 가혹하게 너무 부려먹었구나 싶대요. 그때 그 순간 이후로 나를 좀 더 아끼고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육칠십 대에 나를 찾는다는 것의 의미는 뭘까요?

사오십 대에 인생의 위기가 한 번 찾아왔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려웠는데 권태기와 갱년기까지 겹쳤을 때 많이 힘들었죠. 그때 운 좋게 큰 스승을 만났어요.


김관균 한문 선생님이셨는데, 한문 선생님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선생님이라고 할까. 그분이 “자기가 자기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셨어요. 한자도 잘 모르는 제가 밤새워 공부하며 이해하든 못하든 『논어』, 『맹자』, 『중용』 등을 읽었어요. 당시 불면증 때문에 못 먹는 술을 머리맡에 두고 자던 때인데, 그 선생님 덕분에 집에서 상 펴고 한자 공부를 시작했어요. 밤에 누워있을 때도 눈으로 천장에 한 자씩 써보고요. 그렇게 다 외워서 다음날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게요. 공부가 너무나 즐겁고 재밌었어요. 공부를 시작하니까 남편과 내가 분리되더만요. 내 할 것에 집중했어요, 남편이 오든 말든……. 내 할 일을 하고 있으니 남편에게서 나를 떼어낼 수 있었어요.


숙다방에는 있는 연숙 씨의 서가엔 진짜 좋아하는 책만 모아두었다고 한다 



    기억나요. 《경자 씨와 재봉틀》 두 번째 시간에 나에게 소중한 물건을 들고 오기로 했는데, 책을 가져오셨잖아요.

네. 『논어』 책을 들고 갔었지요. 중년기를 넘어가며 한 공부들이 인생 살면서, 아이 돌보미를 하고 또 손주들 보면서 교육적으로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칠십 대여도 나 자신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내가 행복해야 상대방도 행복해요. 자신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취미 생활을 하든 공부를 하든 무언가를 찾아야 해요. 못한다는 것은 핑계죠. 아주 짧은 시간일지라도, 내 시간을 가져야 비로소 가정과 주위를 살필 수 있게 되고 거기에서 행복이 와요. 어떤 것이든 집중해서 하다 보면 행복할 수 있어요.


다른 집 아이들 봐주는 일을 하더라도, 내가 행복해야 그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더라고요. ‘돈 벌어야 하니까’ ‘가정이 어려우니까’ 하는 생각으로 아이들 만나러 가면, 내 안의 짜증과 염려들이 아이들에게 언어가 되든 손짓이 되든 나오고야 말거든요. 칠십 대여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책을 보든 춤을 추든, 노래하든 해야 해요. 그래야 남편에게도 즐겁게 서비스 할 수 있고요. 나를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연숙 씨 나이 때의 어른들이 나를 찾는 계기는 어떻게 생길 수 있을까요.

삶의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해요. 그 사람이 목사님, 스님일 수도 있겠죠. 삶의 스승, 사회에서 만나는 스승, 누구든 좋아요. 내 맘에 있는 것들을 지혜로운 스승들과 대화하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고 더 좋은 방향으로 풀 수도 있어요. 과거에는 대가족이라서 가족들이 그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대화조차 잘 안 하죠. 좋은 스승은 나의 갈등, 혼돈, 불만을 성찰하게 하고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해요. 찾아갈 스승이나 좋은 대화자가 꼭 있어야 해요. 나는 너무 절실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한학을 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남아있어 그랬는지 동네에서 한문 공부를 하는 곳이 있다기에 찾아갔고 우연히 시작하게 됐고요.


《경자 씨와 재봉틀》교육에 참여하고 나서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다들 하고 싶다고는 했지만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모르더라고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부는 노인 복지관 중심으로 생활하는데, 상대적으로 사회생활을 많이 해본 분들이 가요. 나머지는 양로원에서 화투치고, TV 보고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내고요.



    앞으로 더 배우고 싶은 것이 있는지요?

막내딸이랑 서울에서 있는 정통 요가 학원에 다녔어요. 요가 전문가가 되려는 삼사십 대가 대부분이었는데, 칠십 대는 나 혼자였어요. 일 년 정도 배웠고, 광주에서 노인 요가 선생님으로 복지관에서 강의할 기회도 있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이 많아서 강의는 잠시 멈췄어요. 나는 고급 인력이에요. (웃음) 복지관은 조금 더 늙어서 가야 할 것 같고요.


학교를 많이 안 나온 게 항상 한이죠. 지금이라도 배울 수 있는데 선뜻 안되네요. 다시 중학교 들어가야 할지, 검정고시를 봐야 하는 건지……. 간혹 나이 들어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가는 사람들을 TV에서 보면 너무 용기 있게 보이대요. 지금 배워서 뭐하냐고 사람들은 그러는데, 내겐 마음 깊은 한이에요. 치매 예방을 위해서라도 늘 공부는 필요한데, 사경을 하거나, 한자를 쓰며 나이들고 싶네요.




 못 배운 한을 이야기 할 때 연숙 씨는 금세 울상이 되었다



    다시 한 번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한다면, 칠십 이상 노년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을 위해 ‘어머니·아버지 학교’도 있고, 예비 신랑·신부 수업도 있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고, 자기 나이를 알고 나이에 맞게 행동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앉을 때 설 때, 낄 때와 안 낄 때를 알아야 하고, 그 선을 잘 지켜야 하죠. 즉, 어른은 어른다워야 해요. 나이 든 사람들은 후세들, 자녀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소통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대접받고자 하면 먼저 대접해야죠. 그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 좋겠네요. 또, 독거노인이나 혹은 남자 어른들, 아픈 어른들은 더 소통하기 힘들어 하니까요. 어른다움으로 소통할 수 있으면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외롭지도 않겠죠.




                                                                                     연숙 씨는《경자 씨와 재봉틀》에 참여하면서 "나를 좀 더 아끼고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겠다"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산수동 주택가를 걷다 보면, 집 앞 의자나 평상에 삼삼오오 앉아 계신 어르신들이 많이 보여요. 이분들을 위해서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해요.

사회 빈부격차가 심해요. 경로당에 한 번 가봤었는데 거기서 조차 경제적인 것이 작동하더만요. 경로당조차 못 가고 집에 있는 이들이 정말 어려운 사람이라고 절실히 느꼈어요. 정부가 지원하지만 못 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시간과 돈이 있다 하더라도 안 해 본 사람은 모르더라고요. 흥미랑 재미도 느껴봐야 알잖아요. 몰입할 수 있는 게 하나만 있어도 좋은데……. 최근에 근처에 ‘친환경자원순환센터’라고 큰 건물이 하나 들어섰어요. 골목길에 앉아있는 노인들이 거길 들어갈까요. 안 가고 못 가요. 심리적 거리감 때문에요. 요즘 노인들은 경로당에도 잘 안 가려고 해요. 그 센터가 골목에 앉아있는 노인들도 한 번 들어갈 볼 수 있는, 장벽을 낮춘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래된 주택가에 저런 새로운 공간이 생겼는데 아까워요. 사람들이 아무 때고 찾아와 누릴 수 있는 담 낮은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인터뷰 / 글 : 천윤희(뜬구름 편집위원)
사진 : 조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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