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편지] 신청자는 딱 두 명
광OO
날짜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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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자는 딱 두명


조을정 / 리드앤씽(주) 대표




   장애 ·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하는 기획은, 내 현실의 이야기

올해 들어 가장 더웠던 유월의 어느 날, 문화예술교육 기획자이자 강사로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이름하여 ‘뜬구름 편지’. 진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지만, 어딘가에는 고개를 끄덕일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편지를 쓴다.


사 년 전, ‘LH 소셜벤처’에 선정되어 발달 장애 아동을 위한 통합 예술놀이 키트를 개발하면서 ‘리드앤씽’이라는 이름으로 창업했다. 재작년에는 장애·비장애 어린이가 함께하는 통합예술교육을 하겠다는 목표로 ‘토요문화학교’ 인큐베이팅에 참여했고 올해 ‘예술시민배움터’까지 하고 있으니 딱 삼 년 차 예술단체다.


2023년 예술시민배움터 《작가님이 오십니다》에서 '베리어 프리'를 주제로 어린이들과 동요와 그림책을 만들었다


토요문화학교에서는 장애·비장애 어린이가 느림과 빠름에 상관없이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는 주제로 동요 그림책을 만들었다. 다음 해엔 차이를 존중하고 차별을 없애자는 슬로건 아래 배리어프리를 주제로 동요 그림책을 엮었다. 그리고 올해는 장애 형제를 둔 비장애 아이들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어보려고 했다. 집에서 이 아이들은 ‘엄마에게 슬픔을 보태지 않아야 하고 뭐든지 잘해야만 하는 덜 아픈 손가락’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이 주인공이 되길 바랐다, 문화예술을 통해서.

나는 기획을 할 때마다 ‘장애’라는 두 글자를 빼놓지 않는다. 바로 내가 장애 어린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경증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재활치료를 하며 아픈 아이들 속에 있어야 했고, 장애 있는 아이들의 가정이 어떤 모습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나의 기획은 모두 내 이야기에서 시작한 것이다. 쌍둥이 아들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떠올리며 계획하곤 했다. 작년까지는 장애가 있는 둘째 아들을 위해서, 학년이 높아진 올해는 첫째 아들의 존재가 크게 다가왔기에 그 애 이야기를 기획서에 썼다. 내 기획은 현실이다. 막연히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직접 보고 겪은 일에서 출발했으니 오늘을 사는 누군가의 진짜 이야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좋은 기획이라고 칭찬받았으나, 참여자 모집에 실패

올해 《‘그냥’의 나를 찾습니다》를 기획해 선정되었을 때까지는 신이 났다. 왜? 칭찬을 많이 받았으니까! “꼭 필요한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2024년 예술시민배움터 《‘그냥’의 나를 찾습니다》 포스터


비장애 형제·자매를 만나기 위해 재활치료를 하는 광주 신가병원과 희망병원에 찾아가 치료사 선생님들을 만나 홍보자료를 전하고 포스터를 붙였고 서구·동구·광산구 장애인 복지관에도 갔다. 사설 치료센터 일곱 군데에도 포스터와 안내지를 놔두었고 광주 초등학교 특수교육 선생님들의 커뮤니티에도 알렸다. 협력 기관이자 교육 장소인 이야기꽃 도서관과 선운지구 커뮤니티에도 당연히 말했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리고 싶었지만, 포스터 하나만 게시해도 삼십만 원을 달라기에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때보다 많이 알렸건만, 시작 이틀 전까지 딱 두 명 신청했다. (정원은 열다섯 명) 그것도 우리 아이의 재활 동기 어머니들에게 빌고 빌어서 말이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아니…. 필요한 일이고 좋은 프로그램이라면서 왜 신청을 안 하지. 이게 뭐지?’ 싶었다. 얼마 후 부모들의 진짜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이유. “장애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토요일까지 치료 일정이 잡혀있기 때문에 비장애 자녀를 위해 십 주 동안 시간 맞춰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래서 복지관에서도 하루짜리 소풍을 다녀오는가 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좋은 프로그램인 건 알지만 마주하기가 두렵다. 그동안 애써 묻어놓았던 진실을 꺼낸 후의 일상이 두렵다. 후폭풍을 감당할 에너지가 없다.”



   장애를 넘어 모든 형제·자매의 이야기로 전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실패인가. 사업을 포기해야 하나.’ 생각이 극으로 치달을 무렵, 광주문화예술교육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오르락내리락 요동쳤던 마음은 참여 폭을 넓히기로 한 뒤에야 겨우 가라앉았다. 늘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형제·자매로 대상을 넓혔다. “비단 장애 형제를 둔 비장애 아이들에게만 통하는 기획은 아니다. 동생이 있는 큰딸과 큰형, 형과 누나가 있는 동생이 있는 집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니까.”라고 했던 어느 기획자의 소감이 떠오른 까닭도 있다.

“동생보다 잘해야지, 넌 형인데!” 아니면 “형은 잘하는데 너는 왜 그러니?” 등등…. 우리는 누군가와 비교당하면서 잘하도록 강요받으며 자란다. 그래, 우리 프로그램의 제목인 ‘그냥’의 나를 찾는 첫걸음은 나 아닌 사람과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에서 시작해 보자. 지금까지 벌써 세 번을 만났고, 게임도 하고 초상화도 그리면서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중이다. 이들의 이야기로 대본을 쓰고 뮤지컬을 만들어야 하므로 그들의 말을 아주 잘 들어야만 한다. 이야기가 제일 많이 쏟아졌던 때는 언제였을까? 바로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었던 날이다. 하하하.

비 오는 날 옹기종기 분식집에 앉아 떡볶이, 어묵, 라면, 김밥을 먹다 보니 와우. 까도 까도 이야기가 나오더라. 다들 너무나 솔직히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자매끼리 아니면 남매끼리 싸울까 봐 선생님들이 얼마나 눈알을 이쪽저쪽으로 굴렸는지. 역시 떡볶이는 마법의 요리다. 열 번을 만나고 나면 아이들과 헤어져야 하는데, 그들 마음속에 무엇이 남으면 좋을까. 삼삼오오 우산 쓰고 분식집에서 먹었던 떡볶이의 맛, 몸으로 부딪치며 노느라 진동했던 땀 냄새, 먹고 놀면서도 알게 모르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내비쳤던 순간 등. 알알이 마음에 남게 되겠지.


'그냥'의 나를 찾는 첫걸음은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위에서 내딛자


   살면서 길을 잃었을 때 예술이 그들을 돕기를
무언가를 바라면 안 되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기억하길 바란다. 예술에는 힘이 있다는 사실. 내 이야기는 쉽게 꺼낼 수도 없고 누군가 들으려고 하지도 않지만, 예술로 목소리를 내고 내면을 돌볼 때 나로서 바로 설 수 있다. 나를 서게 하는 힘이 예술 속에 숨어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사는 동안 그 힘을 알아채고 또 예술 곁에서 계속 힘 받길 바란다. 길을 잃었을 때 예술이 그것을 찾게 돕길 바란다. 그 하나만을 바란다. 결국엔 ‘그냥’의 나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예술시민배움터의 동지들을 지난 12일 “단짝쿵짝 워크숍”에서 만났고 다들 고군분투하는 듯 보였다. 처음의 계획대로 아귀에 맞게 딱딱 진행하는 데가 있는가 하면, “때려치우자!”라는 말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하는 곳도 분명 있겠지. 모든 이를 응원한다. 문화예술교육 한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큰 이득도 없지만,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고 여기에 꾸역꾸역 모였으니 우리 스스로 어깨에 뽕 넣고 나아가자. 문화예술교육 하는 이들은 자기 위로에 능해야 한다. 안 그럼 지쳐서 못하니까. 하하하.

만날 덥다. 이번 주 간식으로 시원한 아이스바 하나씩 들면서 파이팅 하시길. 그러니까 제 말은요……. 간식비 좀 늘리면 어떨까요. ‘슈팅 스타’ 사 먹을 정도로! ㅎㅎㅎㅎㅎㅎㅎㅎ






조을정 / 리드앤씽(주) 대표
쌍둥이 아들들의 엄마이자 ‘할 수 있다!’의 대명사.
내 이름은 왜 갑정이 아니여서 평생을 ‘을’로 사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소유자.
그래도 세상의 변화에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으로 특화된 지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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