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시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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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뉴스레터.
문화예술교육의 오늘을 전하는 《아뜨르릉》으로 바퀴를 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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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뜨르릉]✉단추 수프를 끓이는 사람들
2025년 12월호(vol.137)추운 겨울밤, 거지가 마을에 들어섭니다. 배고프고 춥다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지만 없는 체하거나 꺼지라며 그를 쫓아냅니다. 가까스로 예배당에서 몸을 녹인 거지는 자기 코트에 달린 단추 다섯 개를 떼어낸 뒤 예배당 지기에게 말합니다. "단추가 하나만 더 있으면 수프를 끓일 수 있을 텐데." 가난한 마을이라 우리끼리도 나눌 것이 없다며 퉁명스럽던 예배당 지기는 기적을 보고 싶어서 양복장이 집에 달려가 단추 하나를 얻어옵니다. 그림책 〈단추 수프〉(글 오브리 데이비스, 그림 듀산 페트릭) 이야기예요. 거지는 기적을 일으켰을까요. 빨갛고 커다란 냄비에 물과 단추를 넣고 끓이던 그는 설탕, 소금, 후추가 있다면 맛이 좀 나아지겠다며 혼잣말로 중얼거리죠.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씩,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에 있는 것들을 들고 와요. 마늘, 당근, 무, 양파, 콩, 양배추로 끓인 수프를 접시에 담고 있자니 빵, 삶은 감자, 구운 닭, 포도주도 어느새 상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배가 부르자 누군가는 아코디언과 바이올린을 가져와 연주를 했고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했습니다. 집집마다 거지를 초대하는 바람에 그는 여러 날 머물렀고, 떠날 땐 단추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문화예술교육 혹은 삶이라는 현장에서 당신이 나눈, 말도 안 되게 작은 것들을 떠올려보세요. 보이거나 들리지 않더라도 그것이 일으킨 기적을 찰떡같이 믿어보고요. 그리고 기꺼이 당신 단추를 툭 떼어내 냄비에 퐁당 빠뜨려 준 필자, 인터뷰 참여자, 독자 여러분께 절절 끓는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아뜨르릉’이 문화예술의 흔적을 발굴하고 여러 필진들을 통해 기록한다면, 글 밖의 이야기와 글 안의 사람들이 재조명되어 기억될 것이다. 무슨 소용이 있냐며 서운한 대우를 받더라도, 기록과 기억이 계속되면, 문화예술의 생생함과 치유하는 힘이 두껍게 쌓일 것이다.기록과 기억의 힘 "웹진 아뜨르릉"????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고, 무섭지 않은 삶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내 앞으로 나아간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정답이라기보다 삶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에 가까웠다. 이 글을 덮으며, 각자의 마음 근육과 손에 쥔 작은 필살기를 한 번쯤 떠올려보게 된다면 좋겠다.당신의 필살기는 무엇인가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요구받고, 변화하는 참여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문화예술교육자들은 늘 ‘최고의 본 무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놓여있다.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리허설’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마련되어 있다면 좋지 않을까?리허설이 필요해???? ✈️ [센터소식] 〈문화예술실무인재 양성 프로그램〉, 우수 교육생 5명은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싱가포르에서 문화예술 관련 견학을 합니다. ✅ [뉴스레터] 지난 편지를 더 보려면? ???? https://dd-gureum.stibee.com/ ✅ [구독추천] 친구에게 아뜨르릉 추천하기 ???? https://url.kr/bahnce ✅ [정보변경] 나의 이름 / 별칭 보내기 ???? https://url.kr/c12sjn 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 388번길 7 빛고을시민문화관 TEL : 062) 670-7454 E-MAIL : gjarte@gjarte.or.kr 수신거부 : Un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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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뜨르릉]✉밥집을 소개합니다
2025년 11월호(vol.136) 그런 데가 있습니다.밥집인데요. 광주 예술의 거리에 있습니다. 웬만한 한식 메뉴는 다 있고, 식당 곳곳에 작은 꽃과 그림도 있습니다. 뭐, 광주 사람들이야 맛도 멋도 잘 내니까 엔간하면 이 정도 하는데 왜 자꾸 오게 되나 싶었어요. 밥 손님들이 좀 달라요. 터가 터인지라 예술가는 물론이고 그들과 일하는 사람들까지 옵니다. 그래서 식당 기운이 남달랐봅니다. 처지와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비슷한 이들이 모여있으면 보통 아닌 공간이 되는구나. 그날 저녁, 노른자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돌솥비빔밥을 내려다보며 생각했습니다. 이번호에 실어야 할 글 세 편을 좌악 깔아놓고 형광펜으로 밑줄을 박박 긋다가 깜짝 반가웠습니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비스무레한 소리를 했거든요. 보세요. "무엇을 어떻게 한다 보다 어떤 태도로 사람들을 만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함께 경험하고 각자의 질문을 찾아 몰입하게 할 것인가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교육사 미녀 씨와 극작가 지애 씨가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이렇게 썼는데요. 이럴 때 겁나 짜릿합니다. 가재와 게가 한 편을 먹는 순간. 뿐인가요. 올해 만화예술강사를 시작한 김동인 씨가 "대관절 예술교육이란 어떤 건지, 앞으로 강사를 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의 연속인데 물어볼 수 있는 선배는 커녕..."이라 탄식하니, 시민문화실장 현미 씨가 "몇 년 사이 인력양성사업 공백기였던 재단도 더욱 현장과 밀착된 교육을 깊이 고민하려고 한다."라고 화답했습니다, 마치 앞에 있는 것처럼. 문화예술교육하는 사람들의 편지가 수북이 쌓여가는 이곳도 그런 데면 좋겠습니다.외롭고 괴로울 때, 나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요. “나는 한 번도 안 해봤던 걸 하고 나면, 그 전하고는 다른 사람이 돼 있던데.” 좋아했던 드라마 명대사를 가끔 현실에서 실감할 때가 있다. 뭔가 용기 내서 해본 뒤 스스로 깨닫기도 하고, 당장의 변화는 아니지만 내 안에 힘이 쌓이는 걸 느끼기도 한다. 최근엔 우리 재단이 진행하는 ‘RISE’ 사업에 참가한 청년들을 보면서 이 대사를 다시 떠올린다.RISE, 그게 뭔데⁉️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을 기반으로 한 생활 인문학’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인문학이 사람과 삶을 이해하게 한다면, 문화예술은 그 질문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탐색하게 해 주잖아요. 그 사이에서 문화예술교육사는 결국 질문을 열어주고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도록 돕는 사람 같아요.문화예술교육사 '김미녀' 입니다???????? 이머시브 공연은 쉽지 않았다. 커튼을 떼서 그림자극을 진행하고, 형광등에 셀로판지를 붙여 장면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관객들은 학도병이 되어 태극기에 유언을 적고, 주먹밥을 만드는 구례부인회가 되기도 했다. 참여자들은 훨씬 몰입했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함께 만드는 공연???? ???? [행사] 광주여대 RISE 사업이 열매를 맺었어요 (12. 2.) ???? [행사] 조선대 RISE 사업은 과연 끝판왕을 깼을까요? (12. 5.) ???? [소식] 아뜨르릉 올해의 필진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의 팬이 되어봅니다 (12. 8.) ✅ [뉴스레터] 지난 편지를 더 보려면? ???? https://dd-gureum.stibee.com/ ✅ [구독추천] 친구에게 아뜨르릉 추천하기 ???? https://url.kr/bahnce ✅ [정보변경] 나의 이름 / 별칭 보내기 ???? https://url.kr/c12sjn 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 388번길 7 빛고을시민문화관 TEL : 062) 670-7454 E-MAIL : gjarte@gjarte.or.kr 수신거부 : Un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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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뜨르릉]✉코스피가 가래떡 먹여줄까
2025년 10월호(vol.135) 어제 오후. "코스피 4000 시대가 열렸다"라고 자축하는 뉴스를 듣고 좋은 일인갑다 싶었습니다. 나라 형편이 펴지는 모양인데, 국민도 덕 좀 보려나 쬐끔 기대하면서요. 또 어제 오후. "이젠 다들 문화산업에 관심이 많죠. 문화예술교육은 아니에요." 광주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이십 년 넘게 일해온 한 선생님은 한 겹 바지에 오들거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시선 끝엔 빛고을시민문화관 벽에 걸린 '광주 문화예술교육 축제 - 아트날라리'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여섯 글자를 붙잡고 벌인 일들은 대체 어디로 흘러들어 가고 있을까. 답 없는 질문을 뇌까렸습니다. "겨우 몇 사람 가지고 몇 달 동안 이 돈을 써요? 그거 보다 몇 백 명한테 공연 한 번 하는 게 낫죠." 문화예술교육이 궁금하다면서 이내 숫자만 슥 훑고 가는 관계자들의 복붙 반응이 떠올랐습니다. 돈 되는 일이 돈 안 되는 일을 오래오래 밀어주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뭐, "문화예술교육만 짱이다" 이런 소릴 하려는 건 아니고요. 문화와 예술로 사람을 변하게, 성장하게 돕는 일은 귀항께요. 에이, 벼락같이 추워져서 마음도 오그라드나 봅니다. 이럴 땐 여러분이 벌이는 뜻있는 뻘짓거리를 구경하는 수밖에. 월계초등학교 어른과 아이가 가꾼 구들장 논에 풍년이 들어 가래떡 뽑아 나눴다는 농한 풍경, 대일밴드 하나 믿고 못과 망치를 손에 쥔 어린이 목수들 옆에서 붕붕 설레었던 추소현 씨의 고백, 풀 뽑는다 밥 차린다 그림 그리기 싫다며 내뺀 고흥 할머니들을 떠올리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큰 눈으로 다시 들여다본 극작가의 깨달음을 엮었습니다. 세 사람의 이야기가 뜨거운 김 뿜는 다리미처럼 까닭 모르게 구겨진 마음을 쫙 펴고 지나가기를. 그 속에서 아이들은 단순한 체험이 아닌 농(農)한 감각을 배웠을 것이다. 함께 만들고, 함께 심고, 함께 거두고, 함께 나누는 기쁨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감각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문제를 풀어나가고, 서로 협력하며 아이들의 환경을 만들어간 어른들의 마음이 빚어낸 수확이기도 했다.농(農)한 순간들???? 처음엔 ‘처음’이란 게 참 쉽지 않은 순간, 그래서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이제 나에게 ‘처음’이란 조금은 설레는 것. 또다시 올 처음, 그때는 대일밴드를 꼭꼭 어루만지며 첫 못질에 눈을 반짝이던 어린이 목수를 떠올리게 될 순간이 되지 않을까. 이 다짐과 함께.“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목수축제는 처음입니다만???? 문화예술교육에서 ‘참여자 중심’은 여전히 화두다. 일방적으로 참여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참여자 스스로 경험을 통해 변화의 주체가 되는 것. 그것을 위해 우리는 잠시 멈춰야 한다. 멈춰서 상대방의 눈을 보고 표정을 살피고 호흡을 맞춰보자.다른 '사이'를 발견했을 때???? ????️ [연수] 말랑말랑, 감성을 채우는 영유아 교원연수 (10. 29.) ???? [축제] 문화예술교육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트날라리》 (11. 1.) ✅ [뉴스레터] 지난 편지를 더 보려면? ???? https://dd-gureum.stibee.com/ ✅ [구독추천] 친구에게 아뜨르릉 추천하기 ???? https://url.kr/bahnce ✅ [정보변경] 나의 이름 / 별칭 보내기 ???? https://url.kr/c12sjn 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 388번길 7 빛고을시민문화관 TEL : 062) 670-7454 E-MAIL : gjarte@gjarte.or.kr 수신거부 : Un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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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뜨르릉]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 연극 - ① 연극에는 ‘사이’가 존재한다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 연극 - ①연극에는 ‘사이’가 존재한다글 : 권지애 / 극작가침묵이 말하는 것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하는 문학 장르다. 희곡은 주로 대사와 지문으로 구성된다. 그중 지문은 ‘해설과 대사를 뺀 나머지 부분의 인물의 동작, 표정, 심리, 말투 따위를 지시하거나 서술’한다. 흥미로운 것은 ‘사이’다. 대사와 대사 사이에 잠시 멈추거나 정적을 두는 지시의 의미인데, 실제 희곡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김남건 뭘 자꾸 보라는 거야.조형래 응, 그때 그 원고 온 거랑 내가 대충 편집 좀 해봤거든.무대엔, 용우와 샘이 둘만 남는다.사이.장샘이 …박용우 저 친구, 곧잘 외골수처럼 구는 게 있죠.윤성호,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이음, 2019, 29쪽'사이'는 단순한 지시어를 넘어, 침묵 속에서도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과 서사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이 연극적 '사이'에서 우리 삶의 본질적인 연결고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기 위한 잠시 멈춤(pause). 말을 잠시 멈추고 서로의 호흡과 표정을 느끼는 시간을 뜻한다. 연극에서 ‘사이’가 침묵 속에서도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이듯, 우리의 삶에서도 대화 속 멈춤, 관계 속의 적절한 거리는 서로의 존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지난해 전남 고흥군 문화예술단체의 부탁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연극과 미술을 엮어낸 융합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해 달라는 요청이었는데, 문화예술단체로부터 받은 기초자료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해당 마을은 고흥군의 끝자락에 있는 곳으로 상촌, 중촌, 하촌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고흥읍에서 마을회관(중촌에 위치)까지는 약 40분이 소요되며, 마을의 실거주 인원은 140여 명인데, 65세 이상 고령화 비율이 79%인 곳이었다.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마을의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1부는 대형 시트액자 너머에 있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따라 그려보고, 2부는 음악의 리듬에 따라 빠르게 혹은 천천히 움직임을 만들어보는 시간으로 구성했다. 몸 건강과 마음 건강을 모두 지키겠다는 목표가 무색하게 이 수업은 3회차 만에 슬픈 결말을 예상하게 했다. 16명의 참여자가 아무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이유를 여쭤보니, 날이 맑으면 밭에 풀을 뽑아야 하고, 비가 내리면 할아버지(남편)가 바다로 가지 않으니 끼니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마을회관에서 함께 김장하는 날도 있었고, 심지어는 사람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싫다는 의견도 있었다. 문화예술단체와의 8회차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결국 참여자분들이 계시는 마을회관으로 직접 찾아가 참여를 간곡히 부탁하고 독려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몸도 움직이고 생활의 활력도 찾아드리겠다는 이 프로그램은 왜 실패했을까. 연극에서 ‘사이’가 침묵 속에서도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이듯, 우리의 삶에서도 대화 속 멈춤, 관계 속의 적절한 거리는 서로의 존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권지애그 ‘사이’를 놓쳤을 때프로그램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고민하며 ‘사이’의 의미를 곱십게 되었고, 문득 음악극 이 떠올랐다. 이 작품은 ‘목소리 프로젝트’의 작품으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한센인의 슬픔과 고뇌,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헌신, 장애인의 사회적 차별과 배제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절절하게 풀어낸다. 섬:1933~2019 공연사진 ⓒ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실존 인물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센인들의 섬 ‘소록도’ 속 편견과 차별의 서사를 지금의 ‘나’이자 동시대 문제로 확장시킨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극은 물리적・심리적 ‘섬’을 오가며 인물들 간의 깊은 ‘사이’를 탐색하고, 서로의 다름과 고통을 ‘멈춰 서서 들여다볼 것’을 말한다. 한센인들과 마리안느, 마가렛 수녀 ‘사이’의 묵직한 침묵과 교감이 관객들에게 혐오를 넘어선 진정한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문화예술단체에서 진행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에서는 그 ‘사이’를 간과해 버렸다. 참여자들에게는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빡빡한 움직임보다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삶을 존중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멋진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와서 즐기세요. 여러분의 삶이 즐겁게 변할 겁니다!’라는 일방적인 시선과 편견, 오만이 만든 실패였다. 참여자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활력’을 얻는 것보다, 그들이 평생을 살아온 방식과 삶의 맥락을 인정받고 이해받는 ‘공감’이 더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바쁜 일상, 삶의 리듬 속에 필요한 ‘멈춤’과 ‘숨’을 발견하는 대신, 일방적인 ‘활동’만을 제공하려 했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잇는 다정한 빈칸문화예술교육에서 ‘참여자 중심’은 여전히 화두다. 일방적으로 참여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참여자 스스로 경험을 통해 변화의 주체가 되는 것. 그것을 위해 우리는 잠시 멈춰야 한다. 멈춰서 상대방의 눈을 보고 표정을 살피고 호흡을 맞춰보자. 문화예술교육은 그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른 ‘사이’를 발견하고, 그 다름을 존중하며 함께 ‘멈춰 서서’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공감의 장이어야 한다. 참여자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활력’을 얻는 것보다, 그들이 평생을 살아온 방식과 삶의 맥락을 인정받고 이해받는 ‘공감’이 더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권지애타인의 관심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은 사라져 가는 ‘사이’들을 다시금 발견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서로의 빈칸을 채워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연극의 ‘사이’가 침묵 속에서도 깊은 의미를 만들어내듯, 우리 사회의 ‘사이’ 또한 일방적인 소음이 아닌, 서로를 향한 따뜻한 이해와 공감으로 채워질 때 진정한 연결이 시작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은 바로 그 아름다운 ‘사이’를 위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권지애 | 극작가사건의 과정 그 미묘한 층위 안에서 흐릿해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오늘》, 《우리의 연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The Inside》 등을 쓰고, 무대에 올렸습니다.
더보기✉[아뜨르릉] 처음엔 처음이란 게
처음엔 처음이란 게글 : 추소현 / 광주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 팀원피할 수 없으면…시사프로그램의 막내 작가로 근무하던 사 년 전,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수상을 한 적이 있었다. 시상대 위에선 긴장 탓인지 내 심장 소리가 사회자 마이크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경험을 했다. 첫 수상의 순간이었다. 나에게 처음은 늘 그랬다. 처음을 마주할 때, 즐기기보다는 긴장과 떨림으로 잔뜩 겁부터 먹곤 했다. 쿵쿵쿵- 긴장이 멀미로 이어질 때쯤 들려온 취재기자의 수상소감.“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동안 방송도 문화예술의 일환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과정을 시청자의 문화예술 향유라고 생각하며 임했습니다.”“문화예술의 향유.” 당시 나에겐 꽤 낯선 단어였다. 그러나 이 말은 이상하게도 이후로 쭉 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우리의 기획이 어떤 이에겐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니. 피할 수 없다면 즐겨…?올해 나는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어린이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 실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광주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누리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입사를 준비했다. 진행 보조로서 〈어린이 목수축제〉를 한번 경험하기도 했지만, 실무자로 임하려니 달랐다. 시간이 흘러도 내게 처음은 긴장 그 자체, 최대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번 ‘처음’은 내겐 특히 더 어려웠다. 입사 후 모든 일엔 전부 같은 전제조건이 붙었다.“장애가 생긴 이후 처음”전 직장을 퇴사할 무렵 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이전의 나’는 능숙하게 했던 일들도 고장 난 텔레비전 화면처럼 지지직거리는 시야로 해내려니 여러 번 헤매고 서툴렀다. 정신없이 적응하기 바빴던 내게 〈어린이 목수축제〉는 조금은 두려운, 그러나 아주 재밌을 것만 같은 퀘스트와 같았다.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부터는 다시 처음에 대한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놓친 게 있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먹구름처럼 머리를 에워쌌다. 그렇게 디데이는 한 발 한 발 걱정과 함께 다가왔다.정신없이 적응하기 바빴던 내게 〈어린이 목수축제〉는 조금은 두려운, 그러나 아주 재밌을 것만 같은 퀘스트와 같았다. ⓒ청춘기획라이브온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대망의 목수축제 개막일, 허둥지둥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축제 현장을 살피던 중, 한 친구가 손을 높이 든 채 운영본부로 찾아왔다. 못질하다 손을 다쳤다고 했다. 깜짝 놀라 얼른 응급처치해 주고 걱정스레 물어보았다. 망치질이 처음인데 무섭지 않았냐고, 손가락을 다쳐서 많이 속상하겠다고. 돌아온 대답은 당찼다.“아니요! 왜 무서워요? 다쳐도 약 바르고 다시 하면 되는데!”어린이 목수의 대답에 마치 못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린이 목수의 망치 같은 각오가 내 머리를 콩 때린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이유 모를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처음이라 서툴 수 있고 그렇기에 실수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처음이라는 순간도 피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그 후 축제를 진행하는 동안 처음 마주하는 상황들에 전 보다 겁내지 않고 마주 설 수 있었다. 꼬마 멘토 어린이 목수에게 큰 교훈을 얻은 셈이다.어린이 목수 정시후(왼쪽) 씨와 정지연(오른쪽) 씨 사이에 있는 추소현 씨 ⓒ청춘기획라이브온 축제 마지막 날, 어린이 목수와 선배 목수들이 예술가와 함께 지어 올린 작품을 학부모들이 감상하는 네트워크 파티를 열었다. 어린이 목수가 작품을 소개하며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어깨가 한껏 올라갔다. 끝날 때쯤 학부모 한 분이 옆에 와 감사하다는 말씀을 건넸다. 듣기만 해도 준비하며 쌓인 피로가 다 사라지는 듯했다. 그리고 대화 마지막, 나에게 건넨 한 마디.“우리 아이 꿈이 바뀌었어요, 선생님. 이젠 장래 희망이 목수래요. 커서 목수가 될 거래요.”들었을 때는 마냥 기쁘기만 했던 이 말이, 축제가 끝난 후에도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문화예술 향유. 문화예술을 누리고 가지다. 기자의 수상소감에서 그 의미에 고개를 끄덕였고, 목수축제에서 얻은 값진 경험들을 통해 그것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내가 조금씩 성장하는 동안, 축제 참여자인 어린이들은 처음의 설렘을 느끼거나 소중한 꿈을 갖기도 했다. 〈어린이 목수축제〉는 나와 어린이 목수 모두에게 향유의 장이 되었다.처음엔 ‘처음’이란 게 참 쉽지 않은, 그래서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만 싶었던 순간이었다. 이제 나에게 처음이란, 조금 설레는 것이다. 또다시 올 처음엔 대일밴드를 꼭꼭 어루만지며 첫 못질에 눈을 반짝이던 어린이 목수를 떠올리지 않을까, 이 다짐과 함께.대일밴드를 꼭꼭 어루만지며 첫 못질에 눈을 반짝이던 어린이 목수를 떠올리지 않을까, 이 다짐과 함께. ⓒ청춘기획라이브온“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어린이 목수축제〉는 언젠가 다시 출발선 앞에 서게 될 그날의 예고편. 본편에선 더없이 즐겨볼 작정이다. 첫 발표, 처음 가보는 길, 첫 업무, 첫 문장. 각양각색의 처음이 나를 기다린다. 괜찮다. 초행길에선 어떤 풍경이 나를 반길지 모르기에 두근거리고, 첫 업무에서 실수해도 기죽지 않고 성장할 나를 기대할 수 있다. 도전을 주저하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오늘의 처음도 나름 즐겼다 자부하며 앞으로의 첫 순간들을 상상해 본다. ‘아뜨르릉’에 기고한 첫 글. 글을 쓰는 동안 내내 설렜고, 작은 바람과 함께 첫 기고를 마무리한다. 나의 처음을 읽고서, 누군가도 그의 처음을 더는 무서워하지 않기를. 이 글 역시 〈어린이 목수축제〉처럼 누리는 장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나의 처음을 읽고서, 누군가도 그의 처음을 더는 무서워하지 않기를. ⓒ청춘기획라이브온추소현 | 광주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원예술을 사랑한 나머지, 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문화예술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할 때그 순간의 리본을 달아 전달하는 업을요.
더보기✉[아뜨르릉] 농-담(農-談): 월계초와 함께 짓고 나눈 농(農)한 이야기
농-담(農-談): 월계초와 함께 짓고 나눈 농(農)한 이야기글 : 김진아 / 문화학 박사2024년 6월 3일, 월계초등학교에 구들장 논이 탄생했다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응, 진아~ 언니야. 혹시 남는 책 있어? 월계초 교장 선생님이 ‘굳이백배미’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네. 구할 수 있냐고 물으시더라. 그리고 한번 만나고 싶대.”봄기운에 공기가 제법 부드러워진 어느 날, 이산 작가와 나는 『농하고 사회로운 예술실험 쌀-밥 짓기』라는 책을 들고 월계초등학교를 찾았다. 교정에 들어서자 아이보리빛 머리카락에 소녀 같은 얼굴의 송경애 교장 선생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그녀는 들뜬 얼굴로 이곳에 부임하기 전부터 품어온 논농사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했다. 이전 학교에서도 고무통에 흙을 채워 토종벼농사를 지었더랬다. 학교에 논이 있다는 사실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잠재적 교육 효과를 주는지 확신하고 계신 분이었다.“5학년 부장 선생님이 ‘창의랩’ 결과발표를 끝까지 보고 왔거든요. 거기서 구들장 논 만드는 팀을 봤는데 우리 학교 생각이 많이 났다 하더라고요. 어떻게 그런 멋진 발상을 하셨어요.”우리는 멋쩍게 웃었다.“그럼 이번엔 구들장 논에 벼농사를 지어보고 싶으신 거예요?”“그렇긴 한데…. 예산이 전혀 없어서….”“큰돈이 들지는 않아요. 구들장을 놓을 땅, 돌, 흙. 세 가지만 있으면 충분해요.”“그래요? 그럼 대략 얼마나….”“돌이랑 흙을 사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보다 주변에 필요하다고 소문을 내는 게 더 나은 방법이에요. 분명 있을 거거든요.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요.” 재료를 구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지만, 월계초에 구들장 논을 만든다면 어디가 좋을지 둘러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공을 뻥뻥 차는 운동장은 마땅치 않았고, 정문 화단은 크기가 작거나 햇볕이 들지 않아 벼가 제대로 자라기 어려워 보였다. 눈에 띈 곳은 병설유치원 놀이터에 있는 화단. 빗물 저금통을 설치하기에도 좋고, 배수도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 더없이 알맞았다.“놓는다면 여기가 좋겠는데요. 돌이랑 흙만 구해놓으시면 저희가 와서 같이 만들어볼게요.”그렇게 우리는 첫 만남에 돌과 흙을 구해놓으라는 숙제를 드린 채 헤어졌다. 한동안 아무 연락이 없어, ‘못 만들려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교장 선생님이 연락했다.“저희, 돌이랑 흙 다 구했어요!” 소문내서 구해보라고 한 우리나, 그렇게 하란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돌 타령, 흙 타령을 해서 구해놓은 교장 선생님이나 도긴개긴이다. 돈으로 사면 쉽지만 굳이 이렇게 하는 까닭은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것에는 소중함이 깃들기 때문이다. 드디어 구들장 논을 만드는 날. 월계초에 도착하니 교장 · 교감 선생님을 비롯해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까지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아니, 왜….’드디어 구들장 논 만드는 날. 월계초에 도착하니 교장 · 교감 선생님을 비롯해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까지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진아알고 보니 한 학부모가 구들장 논 소식을 듣고 해남 친가에 있는 돌담을 떠올렸고, 뜻 맞는 학부모들과 땀 뻘뻘 흘려 돌 한 트럭을 학교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그사이에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 주는 시민참여예산을 확보했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과 동료 선생님들, 학부모님들이 꾸었던 꿈에 우리들의 마음까지 소복소복 쌓여, 2024년 6월 3일에 월계초등학교에는 구들장 논이 탄생했다. 교장선생님과 동료 선생님들, 학부모님들의 꿈꾸는 마음에 우리들의 마음까지 소복소복 쌓여, 2024년 6월 3일. 월계초등학교의 구들장 논이 탄생했다. ⓒ김진아아이들 몸에 새겨진 농(農)한 감각드디어 월계초 모내기 날. 5학년 네 개 반 아이들 일흔 세 명이 구들장 논에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자신이 심을 모 한 포기를 받아 차례를 기다렸다. 발이 푹푹 빠지는 논을 만나자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깔깔 웃으며 뛰어드는 아이, 발을 빼지 못해 당황하는 아이, 논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아이. 태어나 처음으로 밟아보는 미끄럽고 시원한 흙에 들어간 아이들은 재밌고 신기하고 좋았다고 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논을 만나자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깔깔 웃으며 뛰어드는 아이, 발을 빼지 못해 당황하는 아이, 논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아이. ⓒ김진아“오늘 처음 구들장 논을 심었다. 심은 논의 이름은 ‘멧돼지찰’이다. 5학년 친구들과 같이 심은 거여서 재밌었고 신기했고 좋았다. 내가 심은 ‘멧돼지찰’이 나중에는 더 길게 커서 5학년 3반이랑 맛있는 가래떡을 뽑아서 먹고 싶다. 내가 심은 벼야 많이 많이 커서 만나자!”‘모를 심었다’는 말이 ‘논을 심었다’로 뒤바뀌었지만, 오늘 친구들과 같이 앞으로 ‘쌀’이 될 무언가를 심었고, 그것이 무럭무럭 자라 친구들과 나눌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들은 수업을 마치고 구들장 논을 둘러보았을까? 자기가 심은 모가 잘 자라는지 달려가 확인했을까? 교실 창밖으로 논을 기웃거리며 벼가 얼마나 컸는지 친구와 이야기했을까? 모를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학교 경비 선생님이 아이들의 기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구들장 논을 알뜰살뜰 돌봐주셨다는 사실이다. 논에 물이 마를 것 같으면 물을 채워주고, 피가 보이면 뽑아주고, 쓰러질 것 같으면 끈으로 묶어도 주고. 아이들이 심은 벼가 혹시나 잘 자라지 못할까 봐 그 누구보다 구들장 논을 열심히 돌봐주셨다고 했다. 그 덕에 월계초의 벼는 아이들의 고대만큼 쑥쑥 자랐고, 우리는 가을볕 좋은 날 “풍년이다!”를 외칠 수 있었다.그 덕에 월계초의 벼는 아이들의 고대만큼 쑥쑥 자랐고 우리는 가을볕 좋은 날 “풍년이다!”를 외칠 수 있었다. ⓒ김진아추수날. 우리는 월계초 선생님들의 마음에 또 한 번 감탄했다. 농기구와 학교 책상을 개조해 ‘월계초표 홀태’를 발명해 두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탈곡까지 온전히 경험해 보길 바라는 마음이었단다. 덕분에 아이들은 자신이 수확한 벼를 그 어디에도 없는 ‘월계초표 홀태’로 탈곡할 수 있었다. 농기구와 학교 책상을 개조해 만든 ‘월계초표 홀태’ ⓒ김진아우수수 떨어지는 낱알 소리에 아이들의 웃음과 감탄도 “우수수, 우와아, 우하하”했다. 기대했던 모가 진짜로 쌀이 되어 떨어지니 어찌나 신나 하던지. 수업시간에 배운 민요를 노동요 삼아 떼창하기도 했다.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우리도 신이 났지만, 학생들을 생각하며 홀태를 직접 만들어 놓은 선생님들은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무더운 여름 내내 구들장 논을 돌봐준 경비 선생님은 또 어떻고. ‘월계초표 홀태’로 하는 탈곡 ⓒ김진아연말에는 수확한 쌀을 도정해 가래떡을 뽑았다. 길게 늘어진 하얀 떡 위에 아이들이 농사지은 토종쌀이 콕콕 박힌 특별한 모습이었다. 교실마다 뛰어다니며 우리가 농사지은 쌀로 만들었다고 뿌듯하게 전달했을 아이들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아이들이 전교생과 나눈 떡 한 조각은, 논을 만들고, 모내기하고, 추수하고 탈곡하며 지어온 경험을 통째로 담은 상징이었을 테다. 모든 과정에 담긴 마음들, 함께 느낀 감정과 떠올린 생각들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굳이백배미’가 펴낸 『농하고 사회로운 예술실험 쌀-밥 짓기』에서 이하영 작가는 이를 “농(農)하다”라고 표현했다. “농(農)한 것은 농사를 지을 때 활성화되는 감각이며, 몸으로 배워 삶으로 이어지는 태도와 가깝다”라고 했다.생각해 보면 월계초에서 보낸 우리의 시간은 하나하나가 농(農)한 순간들이었다. 송경애 선생님이 품었던 바람, 학부모님들이 정성껏 옮겨온 돌담, 경비 선생님의 살뜰한 돌봄, 선생님들이 만든 신개념 홀태까지. 어른들의 마음이 겹겹이 쌓였기에 아이들은 구들장 논을 만들고 모내기에서 가래떡까지의 여정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그 속에서 아이들은 단순한 체험이 아닌 농(農)한 감각을 배웠을 것이다. 함께 만들고, 함께 심고, 함께 거두고, 함께 나누는 기쁨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감각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문제를 풀어나가고, 서로 협력하며 아이들의 환경을 만들어간 어른들의 마음이 빚어낸 수확이기도 했다.예술 실험으로 시작한 도심 속 구들장 논, 이름은 ‘굳이백배미’월계초에 구들장 논이 생길 수 있었던 까닭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2년 광주문화재단 광주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창의예술교육랩(lab)’에서 “예술이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나는 〈요리와 이야기〉 랩장을 맡아 다양한 이들을 모았다. 농부, 퍼포먼스 예술가, 철학가, 사진가, 드러머….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 모여 음식에 관한 예술 실험 과제를 받았다. 우리는 도심 한가운데 작은 논을 만들고 토종쌀농사를 지으며 과정을 놀이와 예술로 풀어내는 작업을 했다. 2022년 10월에 시작된 사업은 2024년 2월 결과발표회를 마지막으로 끝났고, 우리에겐 실험하며 만들어 놓은 구들장 논이 고스란히 남았다. 논이라는 것이 요물인 게, 일단 만들었기 때문에 지속적인 돌봄을 요구했다. 마치 논이 “올해도 모내기할 거지?, 같이 농사짓고 밥 해 먹을 거지?”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사업이 끝나 더 이상 지원받지 않아도, 계속 이어가자는 약속을 하진 않았어도, 구들장 논을 함께 돌보는 일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이루어졌다. 때가 되면 모내기를 어떻게 할지 의논하고, 이번 추수는 또 어떻게 재밌게 해 볼지 궁리했다. 이건 정말 “농(農)하다”라고밖에 설명하지 못하겠다. 우리가 논을 실험의 매개로 삼지 않았다면, 광주의 주먹밥이나, 상추튀김, 한정식 같은 것을 주제 삼아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지금처럼 당연하게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었을까?이 감각은 농(農)이 주는 감각, 같이 땀 흘리며 흙과 돌을 다지고 모를 심고 보살피며 함께 수확해서 먹는 모든 과정에서 활성화되는 복합적인 감각일 것이다. 그것을 ‘공동체’, ‘협력’, ‘유대감’, ‘신뢰’ 같은 언어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언어는 “농(農)하다”이다. 어쩌면 돌과 흙, 그 땅이 주는 묵직한 중량감 속에서 우리가 이어지고, 그 속에서 농(農)함이 빚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굳이백배미’ 작업을 이어가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아왔다. 그중 하나는 “어떻게 그렇게 계속하냐”는 질문이다. 이에 정강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인 팀이라기보다, ‘굳이백배미’ 작업을 함께 하면서 새로운 감각들을 계속 찾아내고 그걸 나누는 과정 자체가 작업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굳이백배미’의 구들장 논은 혼자 십 분이면 할 일을 몇 시간에 걸쳐서 논의하고 며칠을 걸쳐서 준비하는데, 어쩌면 그 순간들이 우리가 잊고 지냈던 감각을 소환해 내고 그 경험이 우리에게 너무나 값지다고 여기기 때문에 멈출 수 없는 거죠. 소중한 감각을 점점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픈 마음이 모여, 삼 년 동안 벌써 세 개의 논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2023년 사용자공유공간 planC(맨 위), 2024년 월계초등학교(아래 왼쪽), 2025년 팔복예술공장에 놓인 구들장 논(아래 오른쪽) ⓒ김진아우리의 팀의 이름은 ‘굳이백배미’이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마음속에서 ‘굳이’는 ‘기꺼이’로 읽히기 시작했다. 굳이 도심 한 복판에 굳이 백 명의 사람들과굳이 1인 1모내기하며 토종쌀을 심고 기르는 일이 ‘기꺼이’ 하고 싶은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꺼이 마음을 내어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학교 교육과 지역 공동체, 예술 공간을 잇는 확장된 예술 실험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작업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은, ‘굳이백배미’의 ‘굳이’가 ‘기꺼이’로 읽히는 순간들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굳이백배미를 돌보고 함께 심고 함께 거두어 나눌 것이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레 싹트는 그 마음이 이어지는 한 말이다.김진아 | 문화학 박사요리할 때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 예술가들과 연결될 때 신이나는 사람 문화요리연구소 쿡앤아트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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