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모르는 아시아 이야기
'스토리 레일'
단어에도 생명력이 있다. 어느 단어는 소멸되고 또 어떤 단어는 생성된다. 단어의 생과 사는 우리 삶의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언젠가 부터 ‘이주민’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 단어는 본래의 의미보다 한걸음 더 확장 된 의미로 우리 사회에 깊이 들어 와 있다.
11월 10일 남구에 위치한 그루터기, 아시아외국인근로자 센터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이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진행 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세 살 된 수빈이가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수빈이이 웃음이 낯선 곳을 찾은 필자의 마음을 한결 따뜻하게 해 준다. 고마운 마음에 필자도 제일 먼저 수빈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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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 여성들이 함께 하는 ‘너와 내가 모르는 아시아 이야기’ 수업이 한참이다. |
스토리 레일 위에 이야기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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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루터기에서 직접 만든 레일. 레일 위에 다양한 오브제로 이야기를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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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받는 이주민 여성들 앞에 하나씩 놓여 있는 물건. 이것은 그루터기에서 이 수업을 위해 만든 창작 작품이라고 한다. 손잡이를 돌리면 레일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마치 문화해설사들이 영상을 돌리며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것처럼, 이곳에서는 이주민 여성들의 이야기가 레일 위에 올려 진다. 제법 정교한 움직임을 보인다. 이야기와 표현 방식은 그들이 가진 다양한 배경만큼이나 다채롭다.
너와 내가 모르는 아시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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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의 가족이야기를 직접 그린 그림으로 표현했다.(왼쪽) 솜을 넣은 인형으로 스토리 레일을 꾸며 보기도 한다.(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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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오브제가 이주민 여성들의 고국의 이야기로, 가족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인형을 만들어 표현하기도 하고 직접 그린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레일의 크기에 딱 맞춘 자수 놓은 천이 그 위를 폭 감싸 안은 작품도 인상적이다. 30차시라는 제법 긴 시간을 함께한 이주민 여성들 간에는 또 하나의 돈독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느낌이다. 모두 한국 남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우리사회에 적응해 가고 있다. 그루터기는 다양한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 주면서 문화예술교육을 매개체로 그들이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융화해 갈 수 있도록 지지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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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따라 온 수빈이. 교실 이곳저곳을 탐방하며 놀다가 엄마가 만든 레일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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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가 이 테이블 저 테이블위로 옮겨 다니며 놀고 있다. 어느 테이블에 가던지 다양한 국적의 이모들이 수빈이를 돌봐주고 말을 건네준다. 교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는 내게도 그녀가 다가온다.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고 포즈를 취한다. 사진을 찍어서 수빈이에게 보여주었다. “맘에 들어?”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수빈이와의 사진 찍기 놀이는 한동안 계속 되었다. 수빈이 엄마도 마음 편히 자리에 앉아 작품 만들기에 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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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온지 6년차 카토 토모코씨와 그루터기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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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있을 때에는 디즈니랜드에서 무용수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는 카토 토모코. 그녀는 벌써 한국에 온지 6년차 되는 주부이다. 나주에 살고 있는데도 수업이 있는 목요일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자 한다. 이곳에 오면 한국말도 배울 수 있고 다양한 공예체험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여러 국적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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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승룡 스토리 레일 강사 |
“이주민 여성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성할 수 있어야 해요. 소통을 통한 교육이 필요 합니다”
Q : 한 기수 수업이 30차시다. 7개월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다. 참여자와 강사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가?
A : 처음에는 서로 소통이 힘들었다. 우리와 참여자 간에도 소통이 힘들었고 참여자들끼리도 소통이 어려웠다. 현재 약 7개월 가까이 수업을 함께하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뿌듯하다. 참여자들의 한국어가 정말 많이 늘었다. 말을 못하던 수빈이도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 시간의 힘이다. 수빈이 보다 더 어린 아이도 있는데 기어 다니던 아이가 걷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우리 수업에 아이를 봐줄 인력이 점점 필요해 진다. (웃음)
Q: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다. 수업을 기획하면서 어떤 점을 가장 중요시 했는가?
A: 문화예술 기획형 수업이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획 전 다양한 수업안을 생각했는데 수업을 진행하면서 융통성 있게 노선을 바꾸기도 한다. 참가자 개인의 한국 문화적응 정도에 따라, 그리고 한국어를 얼마나 능숙하게 하느냐에 따라 수업 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Q: 앞으로 이주민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계속 한다면 어떤 수업을 기획하고 싶은가?
A: 이주민들이 본국에서 가지고 있던 문화적 감성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더불어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배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익숙해지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업을 만들어가고 싶다. 보이는 수업이 아닌 소통하는 수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업이 끝났다. 수빈 엄마가 수빈이를 데리고 나가려 한다. 엄마가 신발을 신겨 주려고 하는데 세 살, 수빈이가 아주 정확하고 또렷한 발음으로 소리친다.
“내가 할 거야”
수빈이의 신발 신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수빈엄마는 수빈이가 스스로 신발을 신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다가 마지막에 손가락을 사용해서 뒤꿈치에 신발이 쏘옥 들어가도록 도와주었다. 신발신기에 성공한 수빈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을 배우고 스스로 해냈다는, 만족감이 가득 느껴지는 미소다.
교육명 : 너와 내가 모르는 아시아 이야기 ‘스토리 레일’
취재일시: 2015년, 11월 10일
장 소: (사) 그루터기, 광주 남구 주월동
주관단체: 대한공예심리협동조합
